경벌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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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생원(孫生員)은 난생 처음 어려운 길을 걷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난지 이미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강원도(江原道)땅을 벗어 나지 못하였다. 뜨거운 염천이라 한 낮에 걷는 거리란 불과 몇 십리에 지나지 못하는 데다가 나날이 기진역진 하여 가는 것이 현저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구나 길이 험하고 자갈 많은 강원도 산 길은 그에게 여간 고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수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장돌림말을 만나면 사정을 간곡히 이야기하고 술값으로 얼마를 주기로 하고 얻어 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엽전 한 푼 남아 있지 않게 된 후로는 그것도 할 수 없어서 오로지 과객질을 하여 가며 길을 걸었다.

그것도 상당히 사는 사람의 집을 찾아 들어 가게 되거나 사랑 한 칸이라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집을 만나게 되면 대접도 상당히 받을 뿐 아니라 짚신 값이라도 얻어 가지고 나오게 되지마는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러한 집을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무는 때는 그야말로 노찬풍숙을 하는 고생 몇 차례나 하였다.

그럴 때마다,

『예끼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인고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급기 함흥에 갔다가도 여의치 못하면 그런 놈의 고생이 더 어디 있을꼬.』

하고 곧 돌아서서 서울로 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눈 앞에 떠 오르는 것은 굶주리어 부황이 나다시피 한 늙은 아내의 얼굴이며 밥을 달라고 울며 불며 하는 자식들의 참상이었다.

손생원은 가기 싫은 길을 강잉하여 희양(淮陽) 땅으로 들어 섰다.

돈 있고 여가 있는 사람 같으면 금강산 구경도 하고 온정에서 묵은 때를 씻어버리기라도 하련마는 그럴 여유가 없는 손 생원은 희양읍을 이십리 앞둔 어느 촌에서 하룻밤을 드새게 되었다.

읍내까지 겨우 이십리 밖에 아니 되니 그대로 걸어서 읍내로 들어가려도 못 갈 것은 아니련마는 읍내로 들어간들 환영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촌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십여 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사는 부호 한 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과객질하자는 것이었다.

그 집은 홍승복(洪承復)이란 사람의 집으로 분명히 원근에 떨친 사람이지마는 인색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어 과객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만나보긴 고사하고 객청 하나를 지어 놓고 여간한 사람은 그리로 몰아 넣고 개다리 소반에다가 보리밥 한 그릇을 대접해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손생원은 부근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드새고 가려면 홍 영감댁 밖에 없소 하는 소리를 곧이 듣고 찾아 들어갔던 것이었다.

홍 영감집 하인은 손생원의 의표를 한번 훑어 보고는

『이리 들어 앉으슈.』

하고 객청에다가 몰아 넣었다. 벽은 흙벽이고 방바닥은 지직이다.

더구나 그 방에는 먼저 들어와 앉은 손 하나가 있었다.

나이는 젊되 초초한 시골 선비었다. 오늘까지 과객질을 하고 온 손생원이지마는 소위 부호라 하고 양반이라 하는 집에서 객의 대접을 이다지 박하게 하는 집을 보지 못한 지라 내심에 다소 괘씸하고 분한 생각이 나서

『쥔 양반을 좀 뵙자구 여쭤라. 서울서 오신 손님이 그런다구 그래.』

하고 억지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총각 아이놈에게 호령하듯 하였더니 총각은 아무 말도 없고 곁에 있는 하인 하나이

『쥔 나으리는 읍내 가시구 아니 계슈.』

하고 뻣뻣이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먼저부터 앉아 있는 선비가 빙그레 웃으며 나지막히,

『참으슈.』

한다.

『아니 참고 안 참고가 어디 있겠소마는 아무리 과객질을 하오마는 자기가 양반이면 나두 양반인데.』

하는 것을 그 선비는,

『주인이 없다는 데야 할 수 있읍니까. 원래 이 홍영감이란 사람은……』

하고 그 집 내력과 인색하고 교만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노수 없이 과객질 하는 형편이니 피차 마음을 죽이는 수 밖에 있읍니까.』

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 🙟

『그래 지금 함흥으로 들어가시는 길이올시다 그려.』

『여부가 있소.』

『감사로 계신 분이 동문수학하셨다니 설마 푸대접야 하겠읍니까.』

『글쎄 그런 생각으로 가오마는 사람의 맘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은 없으니까 게까지 갔다가 허행이 될는지 그야 아우.』

『동문수학이시라니 설마 그럴 리야 있읍니까. 그런데 그이가 도임하기 전에는 못 만나셨던가요?』

『흥, 생각하면 사람의 신수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절간에서 서로 너냐 내냐 하고 지냈지마는 피차 출세가 다르고 보니까 고만 멀어집니다 그려.』

하고 자탄을 하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파적겸 하는 것이었다.

벽상에 걸린 기름불은 금방 죽을 듯 깜박이었다.

손생원은 나이 열일곱 때에 동문수학하는 유항(兪絳)과 또 하나 양(揚)모와 세 사람이 절에서 두 달 동안을 공부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라 독서에만 종일을 보낼 수 없어 저녁이 되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잡담에 꽃이 피는 것이었다.

하루는 유생(兪生)이 읽던 책을 탁 덮어 놓으며,

『여보게들, 책 좀 고만 덮게. 글에 미친 무엇이란 말이 있더니 그러다간 자네들 정말 글에 미치겠네.』

『무슨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나?』

『있구 말구 오늘은 각기 우리 자기의 소망 이야기 해 보세.』

『그거 좋은 말일세. 소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마는 기위 자네가 먼저 말을 냈으니 먼저 소원을 이야기 해 보려나.』

『나는 별다른 소원이 없네. 글을 왜 읽는 건가. 과거에 급제를 해서 벼슬을 얻게 되거들랑 한번 장상거 위에 올라서 부귀를 마음껏 누리고 금의환양하는 것이 소원일세. 아마 내 소원이야말로 백인이면 백인이 다 갖고 있는 소원이요 인정이라고 생각하네.』

하고 손생을 돌아보며

『자네는?』

하고 물었다.

『나는 산명 수려한 곳에 일간 초옥이라도 얌전히 지어 놓고 많도 않고 적도 않은 전토에서 나는 곡식으로 그저 남에게 궁한 소리 아니 할 만큼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네. 벼슬을 하자는 것도 따저보면 논밭 전장을 장만하는 것이니까 임천(林泉) 아래 소용하고 강에 고기 낚아서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 또한 인생의 낙이 아닌가.』

『그도 그럴 듯한 생각일세.』

하고 유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생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나는 말할 만한 생각이, 아니, 소원이 없네.』

『이 사람 사람 쳐 놓고 소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 어서 이야기 해보게.』

양생은 다만

『흥, 흥.』

하고 코 웃음만 치고 있다. 그 중에도 촌부자(村夫子) 같은 풍도의 손생은,

『이 사람 아마 일국의 왕이 되고 싶은가 보이 그려.』

하고 비웃었다. 양생은 그 말에 흥분이 되었던지,

『그다지 내 소원이 듣고 싶은가, 그럼 이야기 하지.』

하고 잔 기침을 하고 나서

『장부의 몸이 불행히 해동 변방에 태어 나서 환고일세에 무가득의처(環顧一世 無可得意處)하니 차라리 심수궁곡에 녹림지도(綠林之徒)를 모아 양산박을 꾸미고 장충행의(仗忠行義)에 소향무적으로 불의의 재물(不義之財)을 어다가 유용하게 쓴다 하면 그야말로 취지무금(取之無禁)에 용지불갈(用之不竭)이 아닌가, 도리어 사사의 생활을 생각할진대 가동무녀(歌童舞女) 안전에 나열하고 산해진수를 먹기 싫어 아니 먹을 것이며 명즉경인(鳴則驚人)하고 비즉충천(飛則沖天)의 기세를 맘대로 펴볼 것이니 그 어찌 공경세도 집에 분주 아첨하고 부패한 대관들의 여력(餘歷)을 얻어먹음으로써 영화라 하는 우추들과 동일(同一)로 논할 바이겠는가 소위 영위계구언정 무위우후의 심지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마는 계구이니 우후이니 하되 도대체 벼슬을 얻지 못하는 자 비비유지하니 그는 어찌하는가. 벼슬은 구하여도 얻지 못하지마는 도적이야 하려며는 언제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돈 주고 벼슬 사서 백성의 고혈을 뺏어먹을진댄 차라리 녹림객이 되려네. 자네들 같은 녹녹한 여름 벌레 같은 무리와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으되 재삼 묻기로 대략 이야기가 이러 하이.』

하고 호쾌한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 유생과 손생도 따라서 크게 웃으며,

『농담 좀 고만하게.』

하고 웃음의 소리로 부쳐 버렸다.

이야기를 다 마친 손생원은,

『사람의 운수란 알 수 없소. 그때의 유생은 나중에 과거 급제하여 지금 함경감사로 세도를 하고 양생은 그 후 어디로 갔는지 부지하락이 되고 손생은 오늘까지 포의를 면치 못하고 가세가 빈한하여 옛 친구를 찾게 되는구려. 그때의 손생이란 즉 이 사람이오.』

하고 탄식하였다.

그 젊은 사람은 함께 누워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벌떡 일어나 앉으며, 『그 양생이란 이가 지금 나이가 몇이나 되었읍니까?』

『가만 있거라, 그때 나보다 한 살인가 더 먹었으니까 지금 갖 쉰이 되었나 보우. 그건 어째 물으시우 혹시 무슨 생각나는 일이 있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내 동네에 양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어떤가 하구 물어 보았읍니다. 그래 지금 유감사를 찾아가는 길이구료.』

『별 수 있읍니까? 감사를 찾아 설마하니 빈손으로 돌려 보내기야 하겠소. 그래서 찾아 가는 길인데 노수가 떨어져서 과객질을 하려니까 별별 아니꼬운 일 다 보게 되는구료.』

『없으면 하는 수 있읍니까?』

『당신은 뭘 하슈?』

『저는 농사를 짓습니다마는 서울에 있는 일가를 찾아 갔다가 허행을 하고 노수가 없어서 역시 과객질을 하며 고향으로 가는 길이올시다.』

『인제 여기서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고 말끝을 흐리어 버린다.

🙝 🙟

이튿날 손생원이 눈을 떴을 때에는 곁에서 누워 자던 그 손은 벌써 길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밥을 얻어먹은 손생원은 긴한 일이 없는데 동숙한 손의 일을 물을 필요가 없어서 그대로 길을 떠나, 한 사십리 가량이나 걸었을 때였다. 뒤에서 말을 달려오는 낯 모르는 젊은 사람 둘이 손생원의 곁을 지나며,

『어디로 가시는 손이슈?』

하고 묻는다.

『함흥으로 가오.』

『혹시 손씨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내 성이 손가요.』

『지난밤에 홍감역 집에서 유숙하신 손님이십니까?』

『그렇소마는…….』

그 대답을 듣더니 그 젊은이 둘은 일제히 말께 내려서

『그럼 어서 이 말에 오르십시오.』

『아니 누가 보내는 말이관대?』

『염려 마십시오. 우리 대감께서 말을 보내시면서 뫼셔 오라는 분부가 계셨읍니다.』

『우리 대감?』

『아따, 가시면 아실 게 아니오니까.』

하고 어리둥절하는 손생원을 말께 떠싣다시피 태워가지고는 비호같이 달려간다.

마상에서 손생원은 이리저리 상상해 보았지마는 도무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대감이란 대관절 어떤 대감인가…….

손생원은 말이 달리는 대로 끌려 가면서도 하도 괴이한 생각이 나서 뒤에서 달려오는 마상인을 돌아다 보며,

『우리 대감이란 누구며 그 댁이 어디인가?』

하고 물으니까 그 자는,

『대감이 아니라 우리 장군이십니다.』

『여기서 얼마나 되는가?』

『인제, 얼마 아니 남았읍니다.』

손생원은 입속으로 장군 장군 하면서 또 얼마를 달려 가려니까 한 주막거리에 새 말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대령을 하고 있다가 손생원을 새말에 바꾸어 태워 가지고 또 달리기 시작한다.

손생원은 어쩐 영문을 아지 못하면서도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장군이 누구인지는 모르되 죄진 배 없으니 못된다 헌들 더 못될 것이 무엇이랴 하는 생각으로 담을 크게 먹었다.

점심때가 되어서는 주막거리에서 융숭한 점심 대접까지 하고서는 다시 말께 태워 가지고는 이번에는 깊은 산중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산에는 수림이 그윽하여 천일이 암담하였다. 이윽고 한 고개를 넘으니 문득 안계가 열리며 경개절승한 곳에 고루 거각이 즐비하고 기치창검이 일광에 번뜩인다.

그제야 손생원은 몸이 비상한 소굴에 빠진 것을 깨닫고 간담이 콩만하여 사면을 둘러보는 중에 말이 그 대문앞에 이르매 문안으로부터 여러 부하에게 옹위를 받으며 위연히 이리로 걸어 나오는 일개 장부가 있었다.

몸에는 홍의전복에 청색 쾌자를 눌러입고 머리에 준립(駿笠)을 썼는데 그 늠름한 기상과 좌우위풍이 당당하여 감히 정시할 수 없었다.

손생원은 어마지두에 말께 내리니 그 장부는 손생원의 손을 잡고 대청으로 인도하며,

『자네 그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네 그려.』

하고 무한히 반가워한다. 손생원은 우두망처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 장부의 얼굴을 다시 숙시하니 전일 산사에서 헤어진 후로 부지하락이 된 양생이다.

『자네 이게 웬일인가. 일별 이래로 오늘까지 격조하여 어찌 된줄 몰랐더니 그런데…… 무얼 하기에 이렇게 부귀를 누리고 있는가?』

『지금은 황지부사(潢池府使)를 지내고…….』

『황지부사?』

『모르겠나? 양산박 대도독이라면 짐작하겠네 그려 허 허 허.』

손생원이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눈으로 좌우를 살펴보니 수십 명의 늠름한 부하가 전상전하에 늘어 서서 무슨 영이 있을가 등대하고 있는 폼이 마치 군왕전에 시립하고 있는 대소 신하들과 다름이 없다.

『보게. 저 앞 너른 광에는 기치 창검의 무기와 황금 전곡이 가득히 실려 있어 평생을 먹어도 남음이 있을 것이고 한번 영을 내리면 무부건졸(武夫健卒)이 수백 명 문앞에 등대하니 방가위 녹림대왕이 아닌가? 동서남북을 유의 소적(惟意所適)하고 행장굴신(行藏屈伸)을 무불자유하니 자네들 같이 군수는 방백의 비식을 살피고 방백은 묘당에 아첨하여 전전긍긍의 날을 보내니 그래 가지고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내가 일찍이 절에서 말한 것이 이것일세. 유지자는 사경성(事竟成)이라더니 과연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이. 지금은 뱀같은 건졸이 수만이오 황금이 곳간에 가득하니 무엇을 부러워할 것인가. 그러나 나는 결코 양민의 재물을 탐내지 않느니 탐관오리의 불의의 재물과 인색한 부호의 재물을, 또는 연시일관(燕市日舘)의 진귀한 보물을 가져올 뿐일세. 이것으로 말하면 군등이 나라 일 한다는 핑계로 국고의 전곡을 도적질하여 먹고 백성이 피땀 흘린 고혈을 빨아 먹는 데에다가 대할 것인가, 어차피 인생이란 초로와 같은 것이니 세상의 뜬 허영을 물리치고 은은히 물외의 행락을 받는 것도 또한 세상을 보내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고 목을 높이어 웃음을 웃는다.

손생원은 그의 말도 엄청나거니와 좌우시위가 하도 엄엄하여 한마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단지

『음 음.』

하고 고개만을 끄덕이고 있노라니 이윽고 선연한 미소녀가 십여명 몸에 능라주의를 걸치고 배반을 날라 들이는데 음식도 보지 못한 음식이려니와 옥반금준에 진귀한 그릇이 눈이 현할 지경이다.

양생은 잔을 들어 술을 권하며

『자네와 나는 길이 다른 사람이니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는가, 우리 대취토록 먹어 보세.』

하는 말이 끝나자 대하에서 일어나는 풍악소리, 가위 선경이라 이를만 하였다.

배반을 몇 번이나 갈아 들이고 저녁상을 물린 후에 다시 아담한 술상이 들어온다. 손생원은 난생 처음의 입 사치를 하였다.

『그런데 들으니 자네 가세가 어려워서 함흥 유감사에게로 돈을 얻으러 가는 길이라데 그려.』

『과연 그러하이마는 그건 자네 어찌 아나.』

『그것을 모르고 어찌 자네를 맞았겠나. 자네가 어제 홍감역 집에서 동숙한 사람이 나의 막하일세.』

『허 ──.』

하고 손생원은 눈을 흡떴다.

『홍감역은 만석군의 부호로되 인색하기 짝이 없고 작인에게 박하기 도내 제일이라 그 위인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 막하를 은근히 그리로 보내서 그 집안의 형편을 엿보게 하였더니 우연히 자네를 만나게 돼서 급히 달려와서 나에게 고하기로 자네를 중도에서 맞게헌게 아닌가…… 그런데 함흥가는 것은 그만 두게.』

『그만 두면 어떻거나.』

『내가 서울 자네댁으로 전곡을 치송할 테니 염려 말고 며칠 묵어서 바로 서울로 가게.』

『고마운 일일세마는 여기까지 왔다가 유감사를 찾지 않고 갈 수야 있나. 그 역시 우리의 옛 벗이 아닌가.』

『그건 그러허이. 내가 왜 가지 말라고 하느냐 하면 자네는 유생의 성질을 모르는가, 자네가 머나먼 길을 찾아 갔다 하더라도 아마 자네 집안이 반 년 먹을 것도 주지 않을 것 같으이.』

『글쎄 그럴듯도 허이.』

🙝 🙟

이튿날 한낮이 겨워서 손생원은 산채를 하직하였다.

가만히 보니 서울 집으로 전곡을 보내겠다고 말은 선선히 하지마는 언제 보내는 건지 기필할 수도 없고 또 함흥이 멀지 않았는데 유감사를 보러 왔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무미할 뿐만 아니라 그래도 감사 지위에 오른 사람을 믿고 가야지 제 아무리 호강을 한다 한들 도적 괴수를 믿을 수야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곧 서울로 도로 올라 가려는가?』

『아니 기위 예까지 왔으니 함흥으로 가서 서회나 하고 가려네.』

『그것두 해롭지 않은 말일세. 그러면 자네한테 한 가지 신신당부할 것이 있네.』

『무엇인가.』

『유생을 아니 유감사를 만나더라도 내가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더란 말은 명심하고 누설 말게, 내가 그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목민관으로 있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직책상 그냥 있을 수 없을 것이고 그냥 있지 않으려니 자연 나와 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니 피차 동문수학한 친구로서 병화간에 만나기가 싫어서 그러네.』

『좋은 말일세 결코 누설하지 않음세.』

『당부하네, 자네가 만일 신을 지키지 않고 누설한다면 십보지내에 자네 몸에 해가 있을 것이니 그리 알게.』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손생원은,

『염려 말게.』

하고 장담을 한 연후에 후한 노수와 준마 한필을 얻어 타고는 산채를 떠나 함흥으로 직행하였다.


수일 후에 함흥부중에 이르러 우선 사관을 정하고 하루를 쉬인 후에 유감사에게 자(刺)를 통하니 유감사 역시 반가이 그를 맞아 들였다.

『일자 이후에 그러니 어쩌면 그렇게 못 만나겠나?』

『대감은 대신의 몸이고 이놈은 포의이니 자연 그렇게 될 수밖에 있나.』

『그런데 이번에 어떻게 날 이렇게 멀리 찾았나.』

『다른 게 아니라 궁설을 하러 왔지, 별 수 있는가, 얼마간 부조를 해 주어야겠네.』

『글쎄 나 역시 어려워서 자네 청을 듣기 어려우이마는 노수나 넉넉히 만들어 줌세.』

유감사를 만난 결과는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생원은 감사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동문수학하던 양군이 산적 괴수가 되어 거기서 자기가 대접까지 받고 왔은즉 그를 토벌해서 공을 세워 보라고 권하였다.

유감사는 그 소리를 듣더니 웬일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그거 긴치 않은 말을 냈네. 그 사람이 설혹 도적이라 해도 양민을 못살게 하는 터가 아닐 뿐 아니라 자네에게나 나에게나 죽마고우가 아닌가. 목민관으로 앉아 있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체면상 그냥 있을 수 없고 그렇다고 내가 군사를 움직이면 친구 하나를 없애게 되니, 그 아니 딱한가. 그런 긴치 않은 소리 말게. 더구나 자네로 말하면 대접까지 받고 온 사람이 어찌 그리 신이 없는가.』

하고 도리어 좋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손생은 아첨을 하느라고 그런 말을 하였다가 되려 긴치 아니 생각하니 마음에 뉘우친 바가 있었지마는 기호지세라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자네가 어려우면 나에게 군사 백 명만 빌려주면 당장에 체포해 보임세.』

『자네와 그와는 인물이 달라. 당낭거철이니.』

『천만에 그게 무슨 소린가, 염려 말고 내가 공을 세우거던 포상이나 두둑히 하게.』

하고 조르는 것이다.

유감사는 경박한 손생원의 심지를 가엾이 생각하였지마는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자진해서 한다는 것을 굳이 말리면 상경 후에 어떤 말을 낼런지도 알 수 없으니까 필경 그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하고 군사 백여 명을 풀어 주었다.

『암만 해도 숙호충비 같으이.』

『천만에 자네의 지정불고(知情不告)의 죄를 내가 대신 풀어 줌세.』

손생원은 이렇게 장담하고 군교 백여 인을 영솔하고 함흥을 떠났다.

그에게는 일단 감사에게 아첨하는 마음과 공을 세우자는 것 외에 친구를 팔아 먹는다는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수일 후 ─ 손생원 스스로가 앞장을 서서 그 산중으로 들어가서 산채가 머지 않은 곳에 군교를 매복시키며

『자 너희들은 여기 매복하고 있으면 내 혼자 산채에 가서 기회를 엿보고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되 십분 조심하여 인기척을 내지 말아라.』

하고 얼마를 더 가려니까 전일에 손생원을 중노까지 마중나왔던 부하 하나이 말을 타고 와서

『생원님 웬 일이십니까.』

하고 반가워한다.

『서울 가는 길에 다시 들렸네.』

『그럼 어서 가십시다.』

하고 그 위인은 손생원이 말께 내리려 하자마자 포성이 꽝하고 나더니 수십 명 건졸이 내달아 잡담제하고 손생원을 끌어 내려서 결박을 한다.

『네 이놈들!』

하고 호령을 하려는 손생원의 두 뺨을 보기 좋게 후려치고 고작을 번쩍 들어 꼭두재비를 시키는데 큰 수리가 참새 한 마리를 후려 차가지고 가듯이 손생원의 발은 땅에 다 보지도 못한다.

손생원은 정신이 들락날락하였다.

『얼굴을 들게 ─』

하는 호령소리에 정신을 차려 쳐다보니 대청 위에 위의를 갖춘 양생이 노안을 부릅뜨고 내려다 본다.

『자네 무슨 낯으로 나를 다시 보러 왔는가.』

하고 꾸짖는다.

『아니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욕을 보이는가?』

『자네 죄를 자네가 모르는가, 내가 작별시에 그렇게 신신당부하였거늘 경망히 입을 놀려 친구를 잡으러 오기까지 하니 그럴 법이 있나.』

『천만에 하느님이 내려다 보시지 그런 일은 없네.』

『흥.』

하고 양괴수는 코웃음을 친다.

『사내답지 못하게 이렇게 되어서도 날 속이려고 하는가 가련한 인물이로군 얘 여봐라 ─.』

『네 ─ 이.』

『하옥해 논 교졸을 이리로 대령시켜라.』

『네 ─ 이.』

이윽고 산채 건졸들이 결박한 영교 수십 명을 끌어 들이어 대하에 꿇린다.

양괴수는 그 관졸을 가리키며

『저게 다 누가 데려온 관졸인가.』

하고 호령을 한다 손생원의 얼굴은 흙빛이 되고 말았다.

『과연 내가 경솔했으니 용서하시오.』

하고 고개를 숙인다.

『경솔하다고만 해서 옳을가 신과 은의를 잊고 나를 잡으러 오다니 내 너를 죽일 것이로되 너 같은 소인의 피로 내 칼을 더럽힐 수 없다. 얘 여봐라.』

『네 ─ 이.』

『곤장 열 개만 처라.』

『네 ─ 이.』

영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건졸이 달려들어 손생원을 엎어 놓고 곤장을 친다.

『그리고 관졸들의 결박을 모두 풀러 놔라.』

하여 단단히 묶은 줄을 풀어 놓고는

『너희들은 공연히 저 맹추의 말을 듣고 예까지 와서 고생이 막심하니 되려 불쌍들 하다. 너희들에게 전포(錢布)를 나눠 줄 테니 각기 돌아가서 다시는 이런 범남한 짓을 하지 말라.』

하고는 허다한 돈과 포백을 내서 한짐씩을 지어 주어 내보내는 것이었다.

관졸들은 꿈인 듯이 기뻐하여 칭송을 마지 아니하며 하직하는 것이었다.

수령은 그 길로 광에 가득가득한 전곡을 말끔내 실리며 전각에 불을 질렀다.

『기위 남이 알았으니 여기 오래 있기 부질없다.』

는 이유이었다.

그리고

『저 위인을 대로 상으로 내다가 버려라.』

하는 영을 내렸다.

건졸들은 생원을 묶은 대로 말에 올려 앉혀서 큰길까지 데려다가 결박을 끌러 주었다.

손생원은 목숨만이 살아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어 역시 과객질을 하여 가며 십수일 만에 간신히 서울로 올라와서 오막살이 자기 집을 찾아 가니 집은 의연한 옛 집으로되 들어 있는 사람은 생전에 보지 못한 딴 사람이었다.

『아니 이 집이 손생원 댁이 아니오.』

『손생원님 댁은 떠나셨읍니다.』

『어디로 떠났소?』

『여기서 둘째 골목 막다른 소슬대문집이 올시다.』

소슬대문집이라니 견디다 못하여 남의 집 행낭채에 들었나보다 하고 힘없이 찾아가니 낯 모르는 행낭사람이

『뉘댁을 찾소?』

하고 괄시한다. 그러자 안에서 전부터 있는 할멈이 나오다가 손생원을 보고는 놀라서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우리댁 생원님 오신다.』

하고 고함을 친다.

🙝 🙟

손생원은 아랫목 비단 보료 위에 앉아서 한짐 풀어들인 전곡의 목록을 읽어보고는 뉘우침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었다.

거의 평생을 먹을만한 허다한 전곡은 양괴수가 보낸 것이었다.

올려보낸 날짜를 손꼽아보니 손생원이 산채를 하직한 바로 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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