器官과의 關係는 마치 特別한 咸覺對象이 咸覺的 器官에 對한 關係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이 關係에 있어, 어떤 特別한 超感覺的의 것을, 어떤 特別한 咸覺的의 것에 一致시기어, 超覺的 器官 안에서의 그 位置를 暗示하는 수밖에 方法이 없을 것이다。 言語로서는 이 以上의 일은 할 수가 없다。 말은 超感覺的의 것을 一種의 咸覺的 畵圖에 依하야 表現하고, 다만 이것이 畵圖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것만 말하면 된다。 物 自身을 捕捉하려면, 이 畵圖에 依하야, 表示된 法則에 좇아 그의 自身의 精神 機關을 부리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一般的으로 말하면, 超感覺的의 것을, 感覺的 畵圖에 依하야 表現함은, 그 民族의 咸覺的 認識能力의 發達程度에 준한다。』 이와 같이 말하야, 超感覺的 對象表現은 感覺的 認識能力의 程度에 依하야, 發達한다는 것을 말한 뒤에, 希臘人의 實例를 들어 說明을 더하였다。
그 다음에 言語 自體의 性質에 對하야 말하기를, 『言語는 無法則하게 媒介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直接的 自然으로서 悟性的 生命 속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끊임없이 이 原則에 좇아, 進步하는 言語는 直接生命을 움지기고, 生命을 刺戟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은 (自然스럽게 發達한) 마치 現在의 事物이 사람을 直接 웅지김과 같이, 이 말을 理解하는 사람을 움지긴다。 왜 그러하냐 하면, 말도 또한 物이요, 決코 마음대로 맨들어낸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이것은 咸覺的 方面만 그러할뿐 아니라, 超咸覺的 方面에 잇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항상 進步하는 말은 超感覺的 部分에 있어서도 生命을 刺戟하는 힘이 있어, 적어도 自己의 精神的 機關 부릴수 잇는 사람에게는 틀림 없이 生命을 刺戟한다。 이와 같이, 모든 말은 어느 部分이나, 生命이요, 또 生命을 맨든다。』
피히테는 이러케 한 民族 가운대 처음으로 聲音이 나온 以來, 이 民族의 實際 生活 가운대에서, 끊임없이 發展하고, 그 民族이 實際 體現한 觀察 및 그 民族 모든 다른 觀察과 關係가 잇는 것이 아니면, 自己의 要素로 들이지 아니 한 民族의 말은, 언제나 낱말마다 生命이요, 새 生命을 지어 낸다고 하였다。 또 그는 비록 外國語가 多數히 들어온다고 하여도, 만일 말들이 本來 所有者인 民族의 觀察 環境에 들어올 때까지, 沈默을 지키게 하고, 그 國語의 基礎가 못되게만 하면, 아무런 큰 影響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이와 反對의 境遇 곳 한 民族이 自國語를 집어버리고, 他 民族의 超感覺的 表現을 할수 잇으리만큼 進步한 外國語를 採用한 境遇에는 어떠한 結果가 을가에 對하야 이러케 말 하였다。
『感覺的 方面은 모르나, 超感覺的 部分에 關하야는 國語의 變更이 重大한 結果를 齎來하는 것이다. 超感覺的 方面에 잇어 中途에 國語를 바꾼 民族은 그 國語의 感覺的 畵圖에 包含된 譬喩가 明瞭히 理解되지 않는다 - 그래서, 이 方面에 잇어, 生命을 全然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方法에 以外에 잇어 이 이 民族 特有한 方法에 依하야 이 言語를 다시 發達시길 수가 잇다 하드라도, 언제나 이 超咸覺的 方面 障礙가 … (十六頁로 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