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페이지:조선어학회 한글 (1권 3호).pdf/10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 페이지는 아직 교정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與論은 爲先 民間 有志를 움지기어, 明治 三十一年에 國字改良會를 組織하게 되고, 仝 三十二年에는 日本 帝 國敎育會 안에 國字改良部가 新設되어, 漢字調減과 假名, 羅馬宇, 新字等에 對하야 調査를 行하였으며, 또 政府와 議會를 움지기어, 明治 三十三年에는 文部省 안에 國語調査委員을 두게 하아, 仝年 十一月 五日 附 官報로 여러 專門學者에게 委囑하아, 調査케 한 羅馬字書法의 報告를 發表하엿다。 또 明治 三十五年에는 文部省 안에 國語調查委員會가 成立되어, 日 本國字問題에 對하아, 根本的 調査를 開始하엿다。

또 一方으로 民間에서는 國字는 國民의 實用에 借하는 것인 까닭에, 學者의 理論的 考察보다도 國民의 使用 經驗의 結果를 기둘러 國字問題를 解決하는 것이 當然하다 하야, 明治 三十八年에는 「ロ-マ字ひろめ會」라는 團體가 組織되었다。 이 會는 처음에는 모든 種類의 羅馬字論者를 包含하야, 그 綴字 方式같은 것도 매우 混亂하였으나, 次次 두 種類로 나누이게 되었으니, 하나는 「Romaji Zasshi」의 系統을, 받은 한것으로, 所謂 「헤본式」 綴字法을 使用하고, 또 다른하나는 「日本式」이라 부르는 綴字法을 採用하였다。

「헤본式」이란 것은 英語式 發音에 依한 綴字法이니, 그 名稱의 起源은 米國 宣敎師 J. C. Hepburn氏가 慶應 三年(1867)에 「和英語林集成」(Japanese and English Dictionary)를 出版할 때에 採用한 綴字法을 基本으로 한 대서 생긴 것이다。

「日本式」이란 名稱은 明治 三十八年(1905)에 田丸卓郞氏가 붙인 것이니, 前者가 外國音을 標準하야 分析的 寫音主義를 採用함에 對하야 後者는 綜合的으로 日本語의 性質을 考察하야 日本語 聲音 組緘에 適合하도록 綴字하는 方式이다。 이 두 主義는 서로 容納되지 못하고, 後者는 畢竟 明治 四十三年에 「日本ㅁ-マ字社」를 設立하야, 分離하야 나오게 되었다。 그 후 大正 十年에는 名稱을 「日本ㅁ-マ字會」라 改稱하야,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그 勢力은 도리어 「헤본式」을 凌駕하게 되어, 機關雜誌「Ronazi Sekai」를 月刊하며, 또「Romazi no Nippon]이란 雜誌도 發行하고 있다。 그 外에 字典, 讀本, 其他 여러가지 書籍 이 「日本式」 羅馬字로 出版한 것이 잇다。


七. 假名論의 復活

羅馬字論의 趨向이 저와 같은 一面에 假名도 漸漸 復活하게 되어, 大正, 昭和 時代에 들어와서 擡頭하기 시작하였으니, 上述한바 小森德之氏가 字形이 巧妙한 橫書片假名(自由假名)을 案出하야, 「ヨコガシンブン」을 發行하다가, 氏가 逝去한 후에는, 아무도 그를 繼承하는 이가 없고, 假名論은 一時 中絶狀態에 빠졌드니, 大正 八年 七月에 稻留正吉氏, 仝 十一月에 靑木良雄氏等이 다시 假名國字論을 主張하엿고, 大正 九年 十一月에는 中村春二氏가 平假名 縱書를 主張하야, 「かながきひろめかい」를 設立하야, 雜誌 「かなのめばう」를 發刊(후에 「つばみ」라 改稱하엿다)하엿다。 仝 十年 一月에는 高尾謙一氏가 片假名 橫書로 主張하야, 「ニホンジヒロメカイ」를 設立하야, 翌年부터 「フジン·チョ-ホ-·シンブン」을 發刊하고, 山下芳太郞氏는 仝 十一年 二月부터 「カナモジカイ」를 月刊하고 잇다。 또 仝 十二年 九月부터 前田直平氏는 「ヨコガナ·ヒロメ·カイ」를 創立하야, 「コクジ·シンブン」을 發行하고 잇다。이 外에 山崎笛郞, 衣笠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