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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조선어학회 한글 (1권 3호).pdf/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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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1. 이탈리에서의 改正論

이탈리에 있어서는, 벌서 第13世紀初에 詩人 단테(Dante)의 國語 統一 運動에 盡力함에 依하야, 일족이 그 基礎 얻엇섯 다。 단테는 羅甸語의 轉訛한 各州 方言 中에서 가장 善良한 것을 撰擇하야, 거기에 한 標準語을 規定하는 同時에, 그 것 을 記寫할 적엔 어디까지나 精密한 發音을 準據하였다。

이와 같이, 이탈리 語文은 오랜 옛날에 유다른 단테의 손에 그 開拓의 괭이가 잡히엇으며, 그 뒤에 많은 學者가 輩出하 야, 表的法的 綴字法의 成立에 盡力한 結果, 第18世紀 初에 이르러서는 거진 그 目的을 達하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꽤 完成한 領域에 이르렀으니, 이탈리는 實로 國語表記法 成功의 第一人者라 할 수 잇다。


2. 스페인에서의 改正論

스페인의 表記法도 또한 이탈리의 表記法과 같이 完全한 程度에 이르럿다。 이 改正은 1492年 頃으로부터 시작된 것인 데, 우선 그 改正方法으로 標準語 制定의 必要가 생기매, 1714年에 스페인語의 아카메미 (Academia de la Lengua Espanola)가 建立 되었고, 1744年에 第一回의 改正案을 起稿한 以來로, 1815年의 第八回 改正案에 이르러, 아카데미는 그 改正의 가장 必要함을 認定하였다. 그 뒤 25個年을 지나서, 그 綴字法은 全國的으로 쓰이게 되엇다。


3. 포튜갈에서의 改正論

포튜갈의 綴字法 改正論은 第19世紀 末 頃에 敎育者 間에서, 자주 唱導하야 시작된 것인데, 그 人士들은 特別委員을 選擧하야, 가지가지의 協議을 한 結果, 그 委員은 1877年에 改正決行에 贊成한다는 趣旨의 報告를 하는 同時에, 이러한 改正은 有力한 維持者를 要한다는 点에 注意하야, 王立學士院에 이의 維持를 求望하엿다。 그 뒤엔 이 運動이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아마 漸次 잘 되엇으리라。


4. 프랑쓰에서의 改正論

프랑쓰는 第16世紀에 벌서 從來에 써오든 舊法에서 脫却하야, 表記法上 一大 改革을 하려 한 일이 잇엇으나, 當時는 勿論이요, 그 뒤 300年 間은 그 運動을 贊成하는 이가 少數엿다. 그러른 것이 그야말로 機運이 무르익은 까닭이었는지, 1903年 2月 11日에, 文部省에서는 高等敎育 會議의 建議에 基하야, 省令으로써 프랑세 綴字法 改正 調查委員會를 設置하니, 그 회는 高等育 會議 議員 7人과 學士院 會員 1人과 파리大學 敎授 2人과 衆議會 議員 2人과 모두 12人으로써 組織되었는데, 同會는 同年 6月 25日에 第一回의 會議를 열고, 곧 文部大臣에게 報告書를 提出하엿다。


그러나, 該 報告書를 보면, 同會는 綴字法을 改正하되, 合理的 基礎 우에서 組織的 改正을 할 勇氣가 缺 하엿든듯 하다。 그러기에, 그 改正은 在來 一介의 聲音에 對하야, 여러가지 表記法이 잇엇든 것은, 그 中에서 가장 簡潔明瞭한 것을 撰定하 야, 어디까지나 그것으로 適用케 하므로써 滿足하였다。數種의 表記法이 잇는 것 일지라도, 社會의 旣成한 習慣에 調和를 保持키 爲하야, 그것을 倂存시켰으며, 그리고, 그중에는 矛盾으로 認定하면서도 不得已 그대로 容許한 것도 있었다。 그 뿐인가, 『한가지를 가지고 다른 것을 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