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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조선어학회 한글 (1권 3호).pd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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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朝鮮語講習院 卒業狀

培材學堂 在學 時에는 同門生들과 함께 協成會를 조직하였으며, 獨立新聞社 在中에는 同業者와 한가지 國文同式會를 경영하였으며, 尙洞에 學院이 설립되매, 朝鮮語 文法科를 두게 하고, 당시 醫學校에 知己가 잇으므로, 그 안에 國語 硏究所를 세우고, 밤에는 夜學講習所, 日曜에는 日曜講習所를 두며, 學部안에 國文硏究所가 열리매, 그 연구의 中樞가 되고, 外人들 사이에 韓語硏究所가 생기매, 그 辨難의 표준이 되고, 公私立 學校의 朝鮮語 과정을 교수도 하며, 혹은 자기가 자담하야, 改革運動도 일으키며, 朝鮮光文會가 설립되매, 朝鮮語文에 관한 辭典 編纂의 지도에 전력하며, 自家平生 研究의 근저잇는 운동을 삼으려 하야, 朝鮮語 講習院을 창립하야, 청년을 모아, 敎養에 정성을 다하엿다。

선생의 著書로 오늘날 우리에게 끼치어 준 글은 國語文典音學 한권(隆熙 二年 十二月 六日 博文書館 發行), 朝鮮語文法 한 권(=처음에 國語文法이든 것을 改名, 大正 二年 九月 二十七日 新舊書林 博文書館 發行), 말의 소리 한 권(大正 三年 四月 十三日 新文館 發行)이 잇다。 그 중 말의 소리는 선생이 손조 쓰신 石版印刷 책이다。 아직도 한글을 위하여 할 것이 많고 더욱이 경영만 하고 이루지 못한 말모이(辭典)도 잇엇지마는, 하늘이 목숨을 더 연장하여 주지 아니함을 한하리로다。

선생의 이러틋한 공적과 거룩한 그의 인격은 영원히 후인을 감흥시길뿐 아니라, 선생의 勳業은 朝鮮語와 한가지 그 생명이 영원할 것이다。


가 이질어졌으리。 바위돌 조약돌을 치우기에 임의 손이 아팟으며, 가파른 비렁과 바드러운 산길을 다니기에 임의 다리 저 렷으。 쉬운 길 하로 가기에도 외로움이 어렵거든, 하물며 그렇듯한 깊은산, 험한 길에 一生 旅程을 혼자만 걸었으니, 그 고생이 어떠하였으며, 그 孤寂이 얼마나 심하였으。 孤獨과 勞苦는 임의 맘을 더욱 아프게 하며, 임의 몸을 더욱 피곤케 하였으매라, 三十 九 歲의 壯盛으로써 七月 炎天에 不歸의 길을 떠나시니, 아아, 임의 一生인즉 되엇(疲困하엿)도다。임의 가신 소리 듣고, 講習生들 앞에서 그네들과 함께 목놓아 울든 記憶은 어제같이 새로운데, 꼽아 보면 열 아홉 해 전에 일 이니, 아아, 흐르는 것은 歲月인저!

세월이 이미 빠른지라, 임의 뿌리신 씨들이 자람도 또한 빠르외다。 그 열매는 발서 조선의 목숨을 기르며, 그 열매의 씨는 또한 쉬지 않고 기름진 땅에 뿌려지고 잇읍니다。 임이여 기뻐합소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임이여 도읍소서。 이 씨의 끝없는 번짐을 위하야。 (1932해 7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