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이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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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栗谷 (이율곡)의 어머니 師任堂 (사임당) 申氏 (신씨)

조선의 큰 정치가요 또 큰 학자로 유명한 이율곡 선생 이(李栗谷 先生 珥)의 어머니는 진사 신명화(進士 申命和)의 따님으로 호(號)를 사임당(師任堂)이라 하는 이였다. 어려서부터 천재가 비상하여 여러 가지 경사(經史)를 능히 통달하고 글씨와 그림과 자수(刺繡)를 잘 하였다. 일곱 살 때부터 벌써 당시 조선의 명화가인 안견(名畵家 安堅)의 山水圖를 배워서 山水화를 잘 그리고 또 포도(葡萄)를 잘 그려서 몇 百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구나 그의 화법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는 서화 외에 詩가 또한 문장이요 부덕이 특이하였으니 율곡 선생이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행이 탁월한 것은 전혀 그의 어머니의 교훈을 받은 까닭이어니와 율곡 선생의 아버지 되는 이감찰 원수(李監察 元秀)도 학문과 덕행이 또한 그 부인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한다. 신씨는 아들이 四兄弟(栗谷은 第三子) 낳았으나 몸이 항상 약한 까닭으로 까닭으로 평소에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다가 불행히 일찌기 죽었다. 그는 죽을 때에도 어린 아들들의 장래를 생각하고 그의 남편에게 다시 후취장가 들지 말기를 권고하며 孔子와 曾子가 일찌기 출처를 하고 다시 장가들지 않은 일과 또 朱子가 四十七歲에 그의 부인 劉氏가 죽고 長子 주숙(朱塾)이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아서 내정이 주간무인하되 다시 장가 들지 않은 말을 하니 李氏도 그의 말을 감복하여 다시 후취장가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뒤에 첩을 얻어서 가정이 불화하게 되었으니 율곡 선생이 소시에 금강산에 가서 잠시 동안 불교를 신앙하게 된 것도 그 까닭이었다. 끝으로 사임당의 한시(漢詩) 두 편을 들어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江陵 大關領을 넘으며

   늙으신 어머님을 홀로 두고서
   서울 가니 이 맘은 限것 설소라.
   돌아보니 北坪은 길이 멀은데
   흰 구름만 쌓이고 날도 저무네.

『原詩』
慈親鶴髮在臨瀛 回首北坪時一望
身向長安獨去情 白雲飛下暮山靑[1]
思親

   故鄕은 千里萬里 山이 덮이고
   오락가락 꿈속에 뵈는 옛 마을
   寒松亭엔 외론 달 누를 비치며
   바람은 경포대를 싸고 돌오리.
   모래밭엔 휘도는 갈매기 무리
   東西로 고기배는 드나들으리.
   언제나 다시 한 번 故鄕 갈고
   예전 입는 彩色옷 못내 그립네.

『原詩』
千里家山萬疊山, 歸心長在夢魂中.
寒松亭畔孤輪月, 鏡浦臺前一陣風.
沙上白鶴恒聚散, 波頭漁艇每西東.
何時重踏臨濾路, 綵舞斑衣膝下縫.
  1. 두 번째 구와 세 번째 구가 바뀌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