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지리산녀
- 智異山女
전라도의 지이산(全羅道 智異山)은 소위 삼신산(三神山) 중에 하나인 명산으로 일명은 방장산(方丈山)이라 한다. 산이 그렇게 명산이니마치 그 山 부근에서는 자래로 미인이 많이 산출하였으니 옛날 함양군 사근역(咸陽郡 沙斤驛=咸陽은 慶南이나 亦是 智異山 밑에 있다) 출생으로 동경상인(東京商人=東京은 慶州)과 연애를 하다가 정사합장(情死合葬)하여 망동경(望東京)이란 슬픈 노래를 세상에 전하고 유뢰계 호인(兪溜溪 好仁), 김점필재 일손(金佔畢齋 馹孫) 같은 유명한 시인(詩人)들의 시가(詩歌)를 짓게 한 월명(月明=咸陽 沙斤驛 附近에 只今에도 月明塚이 있다)과 이조 근대(李朝 近代)에 소설로 또는 노래로 극(劇)으로 이름이 널리 알게 된 남원의 춘향(南原 春香)은 누구나 다 아는 미인이어니와 그보다도 훨씬 이전 삼국 시대(三國時代)에 전라도 구례현(求禮縣) 산촌에는 일개 미인이 있었으니 집이 지이山 밑에 있었으므로 세상에서 부르기를 지이산녀(智異山女)라고 하였다. 그는 얼굴이 일국의 절색이었지마는 보통의 미인들과 같이 경조부박하여 성덕이 없거나 조행이 불미하거나 그렇지 않고 유한정정(幽閒貞正)의 덕과 고결청정(高潔淸淨)한 지조가 있어서 집이 비록 가난하더라도 조금도 다른 뜻이 없이 부인의 도리를 충실히 지키니 그때 백제의 임금(王)은 그 여자의 소문을 듣고 크게 흠모하여 다수한 보물과 거다한 금전으로 미끼를 삼어 자기의 후궁으로 다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것을 다 초개와 같이 보고 일언으로 거절하고 최후에는 지이山이란 노래를 지어 죽기로 맹세하고 듣지 아니하니 백제왕도 할 수 없이 그대로 두었다. 그 노래의 내용은 자서히 전하지 않았으므로 알 길이 없으나 그곳의 전설을 들으면 대개 이러하였다고 한다.
지이山의 갈가마귀 머리 희면 희여졌지
송죽 같은 이내 절개 어이 하면 변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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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蟾津江)의 흐르는 물 흘러가면 흘러갔지
강 가운대 백힌 돌을 저이 어찌 굴릴소냐.
만승지외 높다 해도 필부의 맘 못 뺏으리
白雲山의 구름 따러 이 몸 한 번 죽고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