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백제 도미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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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백제)烈女 (열여) 都彌 (도미) ()

신라에 도화랑이 있는 것과 같이 백제(百濟)에도 그와 같은 미인 열녀가 또 있었으니 그는 백제 백성 도미(都彌)의 처다. 그는 비록 천한 사람의 처이나 얼굴이 일국의 절색이요 절행(節行)이 또한 거룩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흠모ㅎ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백제의 임금 개루왕(蓋婁王)은 신라 진지왕(眞智王)에 지지 않는 황음무도한 임금으로 그 여자를 뺏으려고 도미의 처가 천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야심이 불같이 일어나서 먼저 도미를 불러들이었다. 왕은 도미를 보고 말하되

『대체 부인이란 것은 무엇보다도 정결한 것이 첫째라 하겠지마는 만일에 아무도 없는 어둑한 속에서 감언이설로 잘 꾀인다면 아무리 철석간장 같은 여자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들은즉 너의 처가 천하의 미인이나 절개가 갸륵한 까닭으로 누구나 말을 부쳐 볼 수가 없다 하니 만일에 나와 같은 일국의 임금으로 재물과 보화를 많이 주고 궁중에서 총애를 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느냐』고 하였다.

도미는 임금의 말이 너무도 천만뜻밖이요 또 황송한 까닭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한참 있다가 억지로 말을 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녜— 황송하온 말씀이올시다. 사람의 인정이란 알 수 없사오나 소신이 알기에는 신의 처 같은 사람은 비록 죽삽더래도 다른 마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한번 시험하여 보려고 도미를 잡아서 궁중에 가ㅜ어 두고 근신으로 하야금 왕의 복색을 가장하고 거마를 갖추워서 밤중에 그 집에 가게 하고 먼저 사람을 보내서 그 여자에게 임금이 가신다는 통지를 하고 또 말하되 『임금께서 너의 어여쁘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항상 사모하시다가 이번에 너의 남편과 내기를 하여 임금이 네 차지를 하시게 되기 때문에 내일에는 너를 다려다가 궁인을 삼을 터이니 이제부터는 비록 세 남편 되었던 사람에게라도 다시는 몸을 허락지 말고 꼭 임금의 하시는 대로 말을 들어야 된다』 하고 드디어 도미 처의 정조를 범하려고 하였다.

영리한 도미 처는 그 말을 듣고 조금도 다른 기색이 없이 태연자약하게 대답하되

『대단히 황송하온 말씀이올시다. 임금께서 저와 같이 천한 계집을 그립게 생각하시고 정중히 말씀하시오니 어찌 감히 청종ㅎ지 아니하오리까 그러하오나 지금은 의복이 매우 누추하와 귀중하신 옥체를 가까이 할 수가 없사오니 잠깐만 방에 들어가셔서 기다려 주시면 의복을 고쳐 입고 오겠읍니다』

하고 나아가서 집에 있는 종(婢)을 대신으로 단장하여 천침을 시켰다. 왕은 뒤에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여 도미를 죄(罪)로 얽어서 두 눈을 뺀 다음에 끌어다가 적은 배에 태워서 강에 띄워 버리고 다시 도미의 처를 잡아다가 강제로 간음을 하려 하니 도미의 처는 또 이렇게 임시응변의 대답을 하였다.

『제의 남편이 나라에 죄를 지고 이미 죽게 되었사은즉 저는 혼자 살 수 없고 어떠한 남자든지 반드시 다시 얻어야 살 터이온데 황차 임금께서 저를 그렇게 총애하시게 되오니 어찌 감히 거역을 하겠읍니까. 그러나 지금은 경도 중이 되어 몸이 매우 불결한 터이온즉 며칠만 더 기다려서 목욕을 깨끗이 한 다음에 천침을 하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신지무이하여 허락하였더니 그 여자는 남모르게 그만 도망을 하였다. 그러나 강구(江口)에 다달은즉 배가 없어서 도저히 강을 건너갈 수가 없으므로 그는 그만 낙심천만하고 강가에 앉아서 호천통곡을 하고 있었드니 뜻밖에 배 한 척이 풍랑에 몰려 내려오다가 도미의 처 앞으로 떠왔다. 도미의 처는 그것을 천우신조로 생각하고 허둥지둥 올라타서 그야말로 바람 부는 대로 배 가는 대로 정처 없이 가다가 천성도(泉城島)라는 섬에 이르니 뜻밖에 두 눈이 멀은 자기의 남편이 그곳에 있었다. 두 부부는 서로 붙잡고 일장통곡을 하고 풀뿌리를 캐서 연명을 하며 배를 같이 타고 고구려의 산산(高句麗 蒜山) 밑까지 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의복과 음식을 주어 구제하니 그 두 부부는 그곳에서 표랑의 생활을 하다가 아주 이역의 고혼이 되고 돌아오지 않았다.

[1]

  1. 삼국사기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