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박군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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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콜> 병에 담가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海綿)같이 부풀어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 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이던가?

쇠사슬에 네 몸이 얽히기 전까지도
사나이다운 검붉은 육색에
양미간에는 가까이 못 할 위엄이 떠돌았고
침묵에 잠긴 입은 한 번 벌리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더니라.

4년 동안이나 같은 책상에서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사람의 박(朴)[1]
교수대 곁에서 목숨을 생(生)으로 말리고 있고
C사[2]에 마주앉아 붓을 잡을 때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3]
모진 매에 창자가 뀌어져 까마귀 밥이 되었거니.

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 깊은 밤
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던 이 박군은
눈을 뜬 채 등골을 뽑히고 나서
산송장이 되어 옥문을 나섰구나.

박아 박군아 XX[4]아!
사랑하는 네 아내[5]가 너의 잔해를 안았다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동지들이 네 손을 잡는다
모로 흘긴 저 눈동자
오! 나는 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오냐 박군아
눈은 눈을 빼어서 갚고
이는 이를 뽑아서 갚아주마!
너와 같이 모든 X[6]를 잊을 때까지
우리들의 심장의 고동이 끊칠 때까지.

1927.12.2

주석[편집]

  1. 일본 황태자 암살사건에 연루된 아나키스트 박열
  2. 시대일보
  3. 제2차 공산당 사건으로 잡혀 고문을 당하던 끝에 죽은 박순병
  4. 헌영
  5. 주세죽
  6. 恨으로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