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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추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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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뜨라미는 문지방을 쪼아내고
뭇버레 덩달아 밤을 써는데
눈 감고 책상 머리에 앉았으려면
내 마음은 가볍고 무서운 생각에 눌려,
깊이 모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백(百)길 천(千)길 한정(限定)없이 가라앉는다.

그 물속에서 가만히 눈을 뜨면
작은 걱정은 송사리 떼처럼 모여들어
머리를 마주 모았다가는 흩어지고,
큰 근심은 낙지발 같은 吸盤(흡반)으로
온 몸을 칭칭 감고 떨어질줄 모른다.
나는 그 근심을 떼치려고 몸을 뒤튼다.

그럴때마다 내 눈앞에 반짝 띠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꽃같이 새빨간 산호(珊瑚)다.
파아란 해초(海草) 속에서 불이 붙는 산호(珊瑚) 가지는
내 가슴에 둘도 없는 귀여운 패물(佩物)이다.
가지마다 새로운 정열(情熱)을 부채질하는
꺼지지않는 사랑의 조그만 표상(表象)이다.

바닷속은 캄캄하고 차디찬 물결이 흘러도
그 산호(珊瑚) 가지만 움켜쥐고 놓지 않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 괴로울 것이 없다.
불타는 사랑과 뜨거운 정열(情熱)로
이몸을 태우는 동안에는 온갖 세상 근심이
고기밥이 된다 거품처럼 흩어지고 만다.

귀뜨라미야 밤을 새워가며 울거나 말거나
바람이야 삭장귀에 몸을 매달거나 말거나
나는 잠자코 내 가슴의 보배를 어루만진다.
밝을줄 모르는 가을 밤, 깊이 모르는 바다 속에서
눈을 감고 그 산호(珊瑚) 가지를 어루만진다.

19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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