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제5장
원수
[편집]미륵은 밤이 깊도록 수리재에서 얼굴이 검고 키가 큰 사람에게 얻은 활과 칼을 보고 만지고 좋아하다가 잠이 들었다. 칼과 활 얻은 기쁨에 원수 갚을 생각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더구나 수리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던 것을 생각하니 억제할 수 없이 맘이 기뻤다. 미륵은 자면서도 벙긋벙긋 웃었다.
서울이라 하여도 한편 구석인 서산 마을은 반이 깊으매 극히 고요하여 벽 틈에서 씰씰하는 귀뚜라미 소리나 뒷산에서 이따금 울려 오는 쓱덕재 소리도 미륵의 곤한 잠을 깨우지는 못하였다. 문밖에서 자박자박 사람 걸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미륵아!』
하고 문을 방긋이 연다. 미륵은 어슴푸레 들었던 잠을 깨어 일어나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이는 입에 칼을 문 젊은 여인이다. 칼날이 반이나 입속으로 들어 가고 칼 자루에서 시뻘건 피가 뚝뚝 흐른다. 미륵은 무서워서 몸을 피하여,
『그 칼 빼 놓아요!』
하고 그 여인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흔들며,
『이 칼은 너 밖에 뽑을 사람이 없다 ———— 내 아들아!』
하고 손을 내밀어 미륵의 머리를 만지려 한다. 미륵은 그손을 피하였다.
미륵은 눈으로는 칼 문 여인을 보면서도 몸으로는 한편 구석으로 피하면서,
『그 칼을 뽑아요 ———— 뽑아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제 소리에 놀라서 꿈을 깨었다.
꿈에 깨는 대로 벌떡 일어나서 훤한 문을 바라 보았다. 문밖에는 짤짤 신 끄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찬 땀이 흘렀다.
미륵은 한참 동안 정신 없이 꿈 생각을 하고 앉았다가,
『어머니!』
하고 불렀다. 피 흐르는 칼을 입에 문 어머니의 모양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미륵은 그 모양을 붙잡으려는 듯이 두 손으로 허공에 내어두르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머니 내 원수를 갚을 께요! 이 칼로 이 활로 어머니 원수를 갚을께요.』
하고 벽에 걸었던 환도와 활을 만지어 보았다. 어머니의 눈물 흘리는 아름다운 얼굴이 미륵의 눈에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닭이 운다. 귀뚜라미도 운다. 미륵은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아침을 먹고 나서 미륵은 활을 메고 환도를 차고 백면 국선의 집에서 나왔다.
『너 어디로 가니?』
하고 백면 국선이 물을 때에 미륵은,
『어머니 원수 갚으러 가오.』
하고 대답을 하였다.
국선은 미륵의 말에 놀라는 양을 보였으나 더 묻지도 아니하고,
『또 오련?』
하고 물었다.
『못 오지요.』
하고 미륵은 국선을 바라보았다. 국선은 다만 고개를 끄덕끄덕할 뿐이었다.
미륵은 국선의 집에서 나오는 길로 문내 물을 건너 향방 없이 서울 바닥으로 들어 왔다.
오늘이 인산날이라고 아직 이른 아침이언마는 종로 네거리에 소복한 사람들이 담을 쌓았다. 미륵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활이 활이」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말 탄 군사들이 바쁘게 떼를 지어 달려 가고 달려 온다.
미륵은 사람 사이를 뚫고 임해전 앞 큰길을 지나 흥륜사(興輪寺) 골목을 빠져 반월성 대궐을 향하고 갔다. 가면 어찌할 것은 몰라도 대궐 가까이만 가면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잇을 것 같이 생각한 까닭이다.
미륵은 마침내 대궐 문 앞에 다다랐다.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문에는 대화문(大化門)이라는 큰 현판이 붙고 삼문 중에 가운데 문은 아직도 열지 아니하였다. 열린 두문에는 큰 활도 빼 들고 활을 멘 군사와 뻘건 상모 단창든 군사들이 지키어 서고 가끔 소매 넓은 옷 입은 사람들이 혹은 수레를 타고 혹은 가마를 타고 문턱까지 와서는 탔던 것을 내려 옷을 떨고 고개를 수그리고 슬픈 모 길에는 빨간 황토를 깔아 그 황토 위에 사람의 발자취와 수레 바퀴 자국이 난다.
미륵은 사람들의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맨 앞줄에 나섰다. 문을 바라볼 때에 그 문은 자기가 맘대로 들고 나고 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했다. 그 문 안에는 내 아버지의 해골이 있지 아니한가, 내기 왜 저 문을 들어 가지 못할 것인가 하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늘이어 가운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진시라는데 아직 안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소리들을 하였다.
『뒷대궐마마께서 불쌍하시지.』
하는 소리가 미륵의 귀에 들렸다. 미륵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 보았다.
거기는 웬 노파 이삼인이 지팡이에 턱을 받치고 모여 서서 사람들 때문에 앞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들만 하고 있다.
『애매하시지 애매하시고말고, 그게야 큰마마께서 관성 일관을 꾀여서 그렇게 시키신 게지.』
하고 한 노파가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드리면 다른 한 노파는,
『그래서 상감마마께서도 나중에는 그런 줄을 아시었더래. 그래서 가끔 청련 각 연못 가를 거니시며 마마 마마 하시고 한숨 지시는 것을 궁녀들이 여러 번 보았다던데.』
하고, 그러면 또 한 노파는,
『용덕아기는 살았다지?』
하면 둘째 노파가,
『그럼은 ———— 왜 처 용덕아기 젖 드리던 모량아씨가 안고 도망하지 않았어? 그 후에 사람을 놓아서 찾아도 못 찾았지 ———— 에구, 그 아기도 사셨으면 벌써 열 세살이지 그 아기 낳으실 때에 집에 서광이 비치고 나시면서 이가 났더라오. 그이가 살아 계시면 가만히는 안 계실걸 ————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하고 곁에 사람에게는 들락말락 나무아미타불을 몇 번 부른다.
『그 아기가 살았으면 이번에는 나설 테지, 아바마마승하하신데 가만히 있을라고.』
하고 노파가 곁에서 듣고 섰는 미륵을 흘끗 본다.
그러나 미륵의 우스운 꼴을 잠깐 볼 뿐이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조그마한 아이가 남루한 의복에 제 키만한 활을 메고 전통을 지고 긴 환도를 찬 모양은 참 우스웠다.
『용덕아기가 살아 계시더라도 영결에 참례를 못하면 무엇하오?
자식이라도 영결에 참례를 못하면 제사에도 참례를 못한다던데.』
하고 한 노파가 또 미륵을 본다.
미륵은 영결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 말 뜻을 알아야 할 것 같이 생각하였다.
『영결이 무엇이요?』
하고 마침내 미륵이가 물었다.
『이 애가 영결도 모르나 네 어디서 왔니?』
하고 한 노파가 묻는다.
『나 시골서 왔소. 영결이 무에요?』
『어느 시골서 호호호호, 아주 활량인데.』
하고 세 노파는 미륵을 보고 웃는다. 그중에 한 노파가,
『영결이란 무엇인고 하니, 사람이 죽어서 장렛날이 되어서 관이 집에서 떠날 때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
하고 다른 노파들을 돌아 보며,
『아마 대궐에서는 지금 영결을 하시겠지?』
한다.
『영결에 얼굴도 보오?』
하고 미륵이 다시 묻는 말에 그 노파는 고개를 끄떡끄떡 한다.
미륵은 영결 말을 듣고 아바마의 얼굴을 한번만 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였다. 더구나 왕께서 뒷대궐마마를 생각하시었다는 아까 그 노파의 말에 미륵은 아바마마를 원망하던 생각이 없어지고 도리어 이 세상에서 다시 보지 못할 아버지의 낯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미륵은 사람 사이를 뚫고 대화문을 향하고 뛰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떤 장난군이 아인고 하고 모두 심상히 여기었으나 대궐문에 다다랐을 때에는 문 지키던 군사가 붉은 상모 단 창으로 미륵의 가슴을 겨누고,
『이놈 어디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미륵은 굴하지 아니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부릅뜨고,
『무엄한 버릇을 말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군사들도 우 달려 와서,
『이놈 어떤 놈이냐?』
『이놈 애꾸눈이 놈이.』
하고 미륵을 에워 쌌다. 미륵은 허리에 찼던 환도를 쭉 빼어 들고,
『나는 용덕왕자! 아바마마 영결에 참례하러 바삐 가는 길인데 내 길을 막는 놈은 이 칼로 베이리라, 비켜라!』
하고 칼을 내어 들었다.
문 지키는 군사들은「왕자」라는 말에 또 미륵의 위엄과 내두르는 칼에 기운이 줄어서 모두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서 미륵은 대화문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문안에서 지키는 군사는 칼과 창으로 미륵의 앞을 막았다.
미륵도 칼을 두르며,
『나는 용덕왕자, 아바마마 영결에 가는 길 막는 놈은 이 칼로.』
하고 호령을 하였다. 이 말에 늙은 군사 하나가 나서며,
『용덕왕자시면 표를.』
하고 손을 내어 밀었다. 미륵은 그 저고리를 아니 가져 온 것을 후회하고 잠시 주저하였으나 얼른 손으로 자기의 귀를 가리키었다. 군사들은 미륵의 가리키는 귀를 보았다. 과연 승하하신 상감마마의 귀와 같이 크다. 그래서 젊은 군사들은 길을 막았던 찬과 칼을 거두었으나 늙은 군사는 여전히 길을 막고,
『표를 보이시기까지 한걸음도 못 들어 가시리다.』
하고 두 팔을 벌리고 일면 사람을 내전으로 보내어 용덕왕자라고 자칭하는 애꾸눈이가 칼을 두르며 영결 참례로 들어 온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때 내전에서는 종전과 대신들이 모이어 영결과 인산의 절차를 서루 다투고 있었다. 상대등(上大等) 위진(魏珍)은 모든 것을 옛날 우리 나라 법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시중(侍中) 인홍(藺興)은 모든 것을 당나라 법대로 하자고 주장하여 서로 지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이날에 시작된 것이 아니요, 대행마마 승하하실 때 초혼(招魂) 절차에서부터 다툼이 생기어 석 달이나 끌어 온 것이다. 상대등 위진이 주장하는 바는 비록 상감마마께서 당나라의 벼슬을 가지시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형식적 예절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 주상(主上)의 장례를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서 하던 전례대로 즉 임금의 예로 할 것이라 함이요. 시종인홍의 주장은 그것이 옳지 않다, 상감마마께서는 당나라 벼슬로 대도록 계림주 제군사(大都督雞林諸軍事)요, 상주국 신라 왕(上主國新羅王)이란 것을 봉작(封爵)한 직함에 불과한 것이니, 옛날 모양으로 무식한 오랑캐의 일로 황제와 같이 모든 예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 당나라에서 과거하고 돌아 온 최 치원(崔致遠)도 무론 인홍의 편이었다. 위진은 비록 일국의 제일 높은 상대등(上大等)의 자리에 있으나 새로 당나라에 나녀 와당인 모양으로 외자 성과 두 자 이름을 갖는 무리의 세력을 당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위진은 굴하지 아니하고 당나라 법을 주장하는 젊은 벼슬아치를 보면,
『너희들은 당나라에 가서 살아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다.
위진파와 인홍파의 싸움이 가장 격렬하기는 대행대왕의 명정을 모실 때 다 그때에 위진은 . 경문대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고 하고, 인홍과 최치원은 당나라 법을 주장하는 젊은 벼슬아치를 보면,
『너희들은 당나라에 가서 살아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다.
위진파와 인홍파의 싸움이 가장 격렬하기는 대행대왕의 명령을 모실 때다. 그때에 위진은 경문대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고 하고, 인홍과 최치원은 당나라 벼슬로『개부의동삼사검교대위 지절 대도록 계림주 제군사상주국 신라 왕 김응렴(開府儀同三司檢校大尉持節 大都督鷄林州諸軍事上柱國新羅王 金應廉)』
이라고 쓰자고 주장하였다. 이날에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만조 제신이 두 패로 갈라 큰 싸움을 하였다. 더구나 새로 당나라에서 돌아 온 최 치원의 말은 누가 감히 꺾는 이가 없었다. 그때에 상내등 위진은,
『너희들은 오늘도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 살아라! 우리 신라에는 당나라 사람은 없는 것이 좋다.』
하고 얼굴이 주홍 빛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그때에 태자께서도,
『아바마마는 신라 임금이시다.』
하고 인홍과 최 치원을 책망하시었다. 이 때문에 인홍일파도 하릴없이 지고, 상대등 위진의 주장대로 명정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인홍 일파는 기회 있는 때마다 위진과 다투었다.
이날도 모두 상복을 입고 위의를 갖추고 영결과 인산 절차에 마지막 싸움을 하느라고 진시가 지나도록 다투던 판에 용덕왕자라는 이가 영결에 참례하러 들어 온 나는 고목이 들어 왔다.
『용덕왕자!』
하고 일동은 놀랐다. 그리고 여태까지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잠잠하게 일을 감추었다. 그리고 상대등만 바라보았다. 책임 있는 말을 먼저 내는 것보다 상대등이 말을 내거든 만대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인 까닭이다. 위진으 곧 빈전(殯殿)으로 들어 갔다. 거기 금상마마와 두 분 마마께서 계신 까닭이다, 위진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어린 금상마마는 낯을 찡기며,
『아직도 다투나? 진시가 안되었나?』
하시었다. 위진은 황송하여 이마를 마루에 대고 엎드렸다.
『그 사람은 당나라로 보내지 못할까?』
하고 왕은 더욱 불쾌한 빛을 보였다. 위진은 여러 번 이마를 조아린 뒤에,
『큰일이 생겼읍니다.』
하고 입을 열었다. 왕은 위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당나라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나?』
하시었다. 당나라 사람이란 물론 인홍· 최 지원 등을 가리킨 것이다. 왕은 아직 열 네살 밖에 안되셨으나 심히 총명이 있으시었다. 위진은 용덕왕자라고 자칭하는 이가 대궐 문에서 대행마마 영결에 참례한다고 야료한다는 말을 아뢰었다.
왕은 용덕왕자라는 말을 듣고 곁에 있는 어마마마이신 영화마마를 돌아 보시었다. 영화마마는 용덕아기란 말에 까맣게 질렸다. 지금까지도 어디 가서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렇게 대담스럽게 찾아 오리라고는 믿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영화마나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시각이 늦는데.』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정화마마가 나서며,
『용덕아기가 분명할진댄, 곧 들어 오시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죠.』
하고 상감과 위진을 보고 짐짓 정화마마는 보지 아니한다. 영화마마의 아드님이 왕이 되시고 당신은 남편마저 잃어 버리니 설 곳이 없어 자연 전보보다도 영화마마가 미워지는 까닭이다. 정화마마의 말에 영화마마는 왕의 앞에 한걸음 가까이 들어 가 어성을 높이어,
『못하오. 용덕왕자는 대행마마께서 이손 윤홍의 씨라 하여 죽이라고 명하신 죄인이어늘 이제 다시 용덕왕자라 하여 궐내에 들임이 부당하오 ——— 만일 윤홍의 씨를 용덕왕자라고 들인다 하면 내가 물러 나겠소.』
하였다.
왕도 용덕왕자 말을 몇 번 들엇다. 그러나 별로 생각 해 본 일은 없었고 다만 용덕이가 살았으면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 아래라는 말을 기억하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불의에 용덕왕자가 왔단 말을 듣고 왕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맘 같아서는 곧 불러 들여서 대면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태후마마가 그처럼 야단을 하니 어린 맘에 어찌하면 좋으냐고 묻는 듯이 상대등을 바라보았다.
위진은 뒷대궐마마의 아버지의 친구로 그 집 일을 본래부터 잘 알았고 뒷대궐마마도 어렸을 때부터 위진이 귀애하던 바다. 그러하기 때문에 위진은 뒷대궐마마가 애매한 죄로 원통하게 죽은 줄로 알고 더구나 이손(伊飡) 윤흥(允興)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정화마마가 윤흥을 미워하는 데서 나온 모함인 줄을 잘 안다. 윤흥이 무슨 일로 내전에 들어 왔을 때에 평소에 윤흥의 인물을 못 있어 하던 정화부인이 윤흥을 끌었으나 듣지 아니한 원혐으로 그 형님 되는 영화마마에게 애매한 소리를 일러 바친 것이다 영화마마는 . 뒷대궐마마를 해치기 위하여 윤흥까지 끌어 넣은 것이다. 그래서 뒷대궐마마가 칼을 물고 돌아 가신 뒤에 곧 왕은 윤흥을 죽이려 하였고 또 이에 대하여 윤흥은 숙흥(夙興)·계흥(季興) 두 아우로 더불어 이 여화마마를 폐하여 한다고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삼 형제가 다 종로에서 오사를 당하여 죽었다.
그 후에 위진이 뒷대궐마마와 윤흥이 애매한 것을 왕께 말하여 여러 원혼의 원망을 풀려 하였으나 후환이 무서워 아직까지도 발설을 못하고 왔었다. 그러다가 이제 용덕왕자가 왔으니, 이때를 타서 여러 사람의 원통한 일을 귀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위진은 왕께 여쭈었다 —————
『여쭈옵기 황송하오나 용덕왕자 일은 만민이 다 원통히 여기는 바오니 이 때에 성덕을 베푸시어 폐하께서 형제로 대면하옵시고 뒷대궐마마와 운흥의 원통한 혼을 위로하시는 것이 지당하온 줄로 아뢰오.』
하였다. 이 말에 태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위진을 향하여,
『물러나라! 늙은 것이 무슨 망령된 소리를 하노!』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진은 왕의 하교가 내리기만 기다리고 몸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태후는 왕을 보고,
『위진 상대등은 나를, 사람을 모함한 요망한 사람으로 아는가? 때때로 우리 형제를 해치는 말을 하노.』
하였다. 왕은 아직도 말이 없다.
위진은 한번 고개를 들어 왕을 보고 다시 엎드려,
『임금은 하늘의 해오니 만민이 다 바라보는 바오니, 용덕왕자의 원통한 뜻을 푸시옴이 백성을 화하는 일이옵니다.』
하고 또 한번 정성으로 간하였다. 왕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할 때에 태후는 다시 받을 구르며,
『상감마마는 간신 위진을 내리어 내 앞에서 목을 베지 못하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화마마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에 영화마마는,
『너는 물러가 있으라!』
하고 악을 쓴다. 왕은 이윽히 생각하더니 위진을 보고,
『물러나라! 즉각으로 영결 지내고 인산 모시라.』
하고 하교를 내렸다.
『용덕왕자는 어찌하오리까?』
하는 위진의 말에 왕은,
『다시 분부 있기까지 물러 있으라 하되, 야료 있거든 잡아 가두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뭇잎 떨어지는 바깥을 바라보신다.
미륵이가 군사들과 한바탕 승강하고 있을 즈음에 금성태수(金城太守) 중 아손(中阿飡) 왕륭(王隆)이 입내(入內)하는 길에 이 고아경을 보았다.
왕륭은 수상히 여겨,
『웬일이냐?』
하고 군사더러 물었다. 미륵의 앞을 막던 늙은 군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으로 미륵을 가리키며,
『이 아기가 용덕왕자라 하옵고 영결에 참례한다 하와 야료를 하오.』
하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듣고 미륵을 물끄러미 보던 왕륭이 미륵 앞에 꿇어 엎드리며,
『용덕아기오니까?』
하고 물었다. 미륵은 씨근씨근하며,
『그러하오.』
하고 대답한다. 왕륭의 금으로 아로새긴 오동 환도가 미륵의 눈에 띄었다.
왕륭은 한번 더 절하며,
『금성 태수 중아손 왕륭이 현신이오.』
한다. 금성 태수 왕륭은 한주 도독(漢州都督)망에 오른 사람이요, 상대등 위진이 극히 사랑하는 바다. 풍채 좋고 말 잘 타기로 이름 높으며 더우기 칼을 잘 쓴다 하여 왕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왕륭도 위진과 같이 나라이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개탄하고 어찌하던 두 분 마마와 인홍의 무리를 물리치고 나라의 운명을 한번 새롭게 해볼까 하는 야심을 가진 사람이다. 왕륭은 금성 대수로 간 지 삼년에 정병 일만을 기르고 군량과 마초도 삼년 쓸 것은 장만하였고 전하며 그 때문에 조정에서는 왕륭이가 역심을 품었다는 말까지 수군수군하게 된 사람이다. 이러한 왕륭이 미륵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니, 지그까지 길을 막던 군사들도 하나씩 둘씩 왕륭 모양으로 땅에 엎드렸다.
왕륭은 일어나 미륵의 오른편 팔을 두 손으로 붙들어 부액을 하고 내전을 향하여 들어 갔다. 묵묵히 지키던 군사도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 × 그러나 이때에 빈전에서는 큰일이 생겼다. 태후는 왕께 매어 달리어 즉각으로 위진의 상대등을 면하고 인훙으로 상대등을 삼지 아니하면 목숨을 끊는다고 몸부림을 하였다. 왕이 여러 가지로 말하나 듣지 아니하고 위진의 목을 베기 전에는 살지 아니한다고 악을 썼다.
정화마마는 자기를 빈(嬪)으로 대접하려던 인흥이다. 상대등이 되면 자기도 죽어 버린다고 야단을 하였다. 황(晃)아기며 만(曼)공주는 곁에서 울었고 근시하는 신하들은 먼 발치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왕도 하릴없이 상대등 위진과 시중 인흥을 파직하고 태후의 뜻을 받아 즉각으로 이 손 위홍(魏弘)을 상대등으로 하시고, 대아손(大阿飡) 예겸(乂兼)으로 시중을 하시었다. 대내(大內)에 모였던 만조 백관은 인산 날 갑자기 정변에 눈이 휘둥그래 지었다.
파직되는 길로 전 상대등 위진은 태후께 불경하였다는 죄로 옥에 내리우고 전시중 인흥은 집에 안치(安置)하라 하시는 전교가 내렸다.
인흥은 왕께서 마땅히 않게 생각하신 까닭이다.
새로 상대등이 된 위홍은 본래 태후와 좋지 못한 말이 있던 사람이다.
태후의 내명을 받아 위홍은 용덕왕자를 잡되 만일 그를 두호하거나 도망케 하는 자는 용덕왕자와 같이 벌하리라는 엄명을 내리었다. 위홍은 나라의 정권이 태후의 손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태후의 맘에 들기 위하여 이러한 것이다. 예겸은 어진 사람이었으나 위홍의 매부였다. 미륵이 왕륭의 부액을 받아 거의 내전 문에 다다랐을 때 한떼 군사가 문 뒤에서 달려 나와,
『이놈 섰거라!』
소리를 치며 미륵과 왕륭을 위에 쌌다. 왕륭은 군사들을 향하여,
『누구신 줄 아느냐 ———— 용덕아기시다.』
하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은 벌써 위진이 파직을 당하고 위홍이 상대등이 된 줄을 알기 때문에 왕륭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왕륭에게 육박하였다. 왕륭은 형세가 그른 줄 깨닫고 칼을 빼어 달려드는 군사 몇을 베고 미륵을 앞세우고 일변 따르는 군사를 막으며 대궐 북문인 현무문을 향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현무문에는 벌써 복병이 지키고 있다가 미륵과 왕륭을 엄습하였다. 왕륭은 현무문에서 복병이 내달음을 보고 미륵을 돌아 보며,
『금성 태수 저 군사들과 싸우는 동안에 아기는 도망하시오.』
하고 칼을 들고 복병을 향하여 나가며,
『너희들 금성 태수 왕륭을 아느냐?』
하고 시살하였다.
미륵은 늙은 은행나무 뒤에 숨기고 전통에 살을 빼어 복병을 향하여 쏘았다. 한 살이 한 군사를 거꾸려뜨리나 전통에 살은 몇 개 안 남고 군사는 수없이 많았다. 미륵은 있는 대로 다 쏘아 십여 명을 거꾸러뜨리고는 남은 살 하나를 메어 내전을 향하여 들여 쏘았다. 그 살은 푸르르 날이 바로 혜화전(惠化展) 뒷기둥에 박히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미륵은 왕륭이 군사들을 유인하여 빙고(氷庫)쪽으로 치우치어 간 틈을 타서 현무문을 빠져 나와 샛길로 돌아 달아나 버렀다. 이 일 때문에 오시나 지나서야 겨우 인산이 대궐문을 떠났다. 용덕왕자가 왔다——— 대궐 안에서 싸움이 났다 ——— 금성 태수가 반(叛)하였다, 하는 소문이 상안에 퍼지자 모였던 백성들은 무슨 큰일이난 줄 알고 수군수군 들먹들먹하였다. 혹은 불원에 큰 난리가 벌어지리라 하여 달아나는 이도 있고, 혹은 용덕왕자가 병법이 신통하여 단신으로 능히 대궐 안에 있는 군사를 당하고 임금이 되시리라는둥 되었다는둥 별별 소문이 다 돌다가 마침내 영여 뒤에 나오시어야 할 왕이 아니 나오시는 것을 보고는 더구나 백성을 사이에 의심이 많았다.
혜화전 뒷기둥에 살이 박힌 것이며 용덕왕자와 왕륭이 문 지키던 군사를 다 죽이고 도망하였다는 말에 대궐 안은 물 끓듯하였다. 태후는 상대등 위홍을 명하여 세 영문 군사를 풀어 용덕왕자와 왕륭을 잡으라고 하였으나 마침내 잡지 못하고 북문으로 들어 오는 백성의 입으로 어떤 장군 하나가 혼자 말을 타고 북으로 달아났단 말을 듣고야 비로소 왕륭이 장안에 없는 것은 다행이어니와, 용덕왕자의 간 곳을 몰라 태후는 발을 구르고, 사람들은 겁을 내었다.
「그저께 수리재에서 활 잘 쏘던 애꾸눈이가 용덕왕자이다」하고 다 알게 되매 더우기 대궐 안에서는 근심이 되어 왕께서는 옥체 미녕(玉體未寧)하시다는 핑계로 행행(行幸)이 없으시기로 결정을 하고 이러노라고 오시가 지나서야 인산을 모시게 된 것이다.
인산 행렬이 장안 대로로 나아갈 때에도 뒤에 따르는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휘날 아 지나가도 이것이 용덕왕자의 살이나 아닌가 하여 고개를 흠짓하고 공작터(孔雀址)능에 다다른 뒤에도 어디서 용덕왕자의 살이 나오지 아니하는가 하여 사람들은 힐끗힐끗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침내 용덕왕자의 살은 날아 오지 아니하고 말았다. 인산에 참례했던 사람들은 저녁때 집에 돌아 와서야 비로소 휘유하고 맘을 놓았다. 그러나 잠깐 맘을 놓은 뒤에는 다시 새 무서움이 생겼다. 왕륭이가 금성 정병을 거느리고 서울로 치러 들어 오면 어찌하나, 용덕왕자가 수없는 살을 가지고 와서 장안으로 쏘아 들여 보내면 어찌하나, 그중에도 대궐 안에서는 더욱 무서움이 많았다 용덕왕자의 . 무서운 살———— 대궐 기둥에 박혀 부르르 떨던 살이 눈에 보이어 궁녀들은 밖에 나가기도 무서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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