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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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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편집]

미륵은 천신 만고로 서울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애꾸눈이를 잡으라는 영이 내려 애꾸눈이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붙들려 가는 판에 미륵은 며칠 동안을 낮이면 산에 숨고, 밤이면 정처 없이 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려다가는 마침내 붙들린 근심이 있으므로 미륵은 한 꾀를 생각하였다.

미륵은 활과 환도를 거적에 싸서 질머지고 지팡이 하나를 짚고 아주 장님 행세를 하기로 하였다. 사람 없는 것에서는 한 눈을 뜨고 가다가 사람이 오는 기척이 있으면 곧 한 눈을 마저 감아 버리고 지팡이로 길을 찾았다.

이 모양으로 동네마다 밥을 빌어 먹으며 며칠을 가서 태백산(太白山) 동구에 다다랐다.

미륵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늙은 소나무 뿌리를 베개 삼아 한잠을 자다가 솔솔 부는 깊은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져 굴러 다니는 소리에 잠이 깨니 벌써 석양이다. 몸뚱이에 검은 점 박힌 다람쥐가 도토리를 입에 물고 뛰어 오다가 미륵을 보고는 우뚝 서서 길단 꼬리를 흔들었다.

미륵은 다람쥐 모양으로 마른 보습나무 밑을 헤치고 쓰디쓴 도토리를 한바탕 주워 먹고 나서는 쫄쫄쫄 물소리 나는 데를 찾아 넓적 엎드린 주린 배를 찬물로 채웠다. 물을 먹고 나서는 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도토리를 주워 먹으며 돌아 다닐 때에 어디서,

『이놈아, 웬 놈이냐?』

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륵은 깜짝 놀라 둘러 보니 웬 중 늙은이 중 하나가 여남은 살 된 상제를 데리고 오다가 지팡이로 턱을 받치고 서서 쉰다.

미륵은 얼른 소경 모양으로 턱을 받치고 서서 쉰다. 미륵은 얼른 소경 모양으로 지팡이를 내어 두르며,

『길 가던 애요.』

하였다.

『길 가던 놈이 길은 안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해?』

『배가 고파서 도토리를 주워 먹어요.』

『이놈아, 도토리를 주워 먹으면 다람쥐는 무엇을 먹고 겨울을 나?』

『다람쥐 먹을 것은 내놓고 먹어요.』

미륵의 말에 중은 껄껄 웃었다. 미륵은 여전히 소경 모양으로 두리번 두리번하며 지팡이를 내어 둘었다. 그것을 보고 어린 상제가 깔깔 웃으며,

『하하, 쟤가 장님이야요.』

한다. 미륵은 옳다 되었다 하고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미륵이가 거의 다 길에 나왔을 때에 중이 지팡이를 들어 미륵의 머리를 딱 붙이며,

『허 이놈! 어른을 속이고.』

미륵은 한손으로 얻어 맞은 데를 만지며,

『아니요, 정말 소경이요.』

하였다.

『소경이 도토리를 주워. 이놈 네가 애꾸눈인 줄을 내가 다 아는데.』

미륵은 자기를 븥들려는 사람이나 아닌가 하여 머리가 쭈뼛하였다.

그러나 중은 말을 이어,

『요사이 용덕왕자 잡노라고 애꾸눈이 잡는다니까 너도 용덕왕자를 알까봐서? 하, 그놈 네까진 놈을 누가 용덕왕자로 알어?』

하고 중은 지팡이 끝으로 미륵의 눈깔을 찌르려 한다. 미륵은 안심하고 선한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은 석양 빛을 받아 빤짝하였다.

『참말 애꾸눈일쎄.』

하고 어린 상제가 좋아라고 웃는다.

눈 뜬 미륵을 보고 중은 뚱뚱한 배를 흔들고 가늣한 눈을 감고 한참이나 유쾌한 듯이 웃더니, 어찌할 줄을 몰라서 멀뚱멀뚱하고 섰는 미륵을 보고,

『너 어디 사는 아이냐?』

하고 귀여운 듯이 묻는다.

『나 저 저 수리재 살아요.』

『이름은 무엇이고?』

『애꾸눈이고.』

『하하, 이름 좋다.』

하고 중과 상제는 또 한바탕 웃는다. 이때에 어디서 꽝꽝하고 쇠북 소리가 울려 온다.

중은 울려 오는 쇠북 소리를 듣고 얼른 웃음을 그치고 합창하고 쇠북소리 오는 편을 향하여 여러 번 절하고 입으로 무엇을 중얼거리고 어린 상제도 늙은 스님 하는 대로 조그마한 두 손뼉을 마주 대고 고깔 쓴 머리를 굽혔다 들었다 한다.

미륵은 우두커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늙은 중의 반들반들한 머리에 떡갈나무 잎 하나가 떨어져 미끄러져서 먹물 들인 칡베 장삼 등으로 굴려 내린다. 수없는 금 화살 같은 저녁 볕이 잎 떨어진 나무 사이를 뚫고서에서 동으로 가로 달아난다. 쇠북 소리는 그치었다. 웅웅하는 남은 울음이 고요한 수풀 속에 갈길을 잃고 헤맨다. 미륵은 문뜩 자기의 고요한 수풀 속에 갈 길을 잃고 헤맨다. 미륵은 문뜩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고 설움이 생겼다. 며칠 동안 도망해 다니기에 정신을 못 차려 미처 생각할 새 없던 기억이 한꺼번에 솟아 올랐다. 미륵은 다른 곳을 보는 듯 고개를 돌리어 흘러 나오는 눈물을 얼른 주먹으로 씻어 버렸다.

<꼭 원수는 갚고야 만다!>

하고 미륵은 이를 악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은 예불을 마치고 한번 크게 기침하여 가래를 뱉아 버리고 다시 능글능글 웃으며,

『그래 부모 계시냐?』

하고 미륵에게 묻는다.

『다 돌아 갔어요.』

하고 미륵은 코를 풀었다. 미륵은 아바마마를 생각하고 입에 칼을 물고 꿈에 오셨던 어마마마를 생각하고 떨리는 몸을 억지로 눌렀다.

『그러면 어디로 가?』

하고 중이 또 묻는다.

『밥 얻어 먹으러 가요.』

『어디로?』

『아무 데나.』

중은 물끄러미 미륵의 괴로와하는 얼굴을 보면서도 여전히 능글능글하게,

『너 우리 집 가련? 우리 집에 가서 볼 때어 주면 밥은 먹여 주마.』

하고 웃는다.

미륵은 서슴치 않고,

『가요.』

하고 대답하였다.

중은 또 웃으며,

『너 이놈 눈깔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밤낮 한 아궁이에만 불을 뗄레?

우리 부엌에 아궁이 둘이다.』

미륵도 웃으며,

『두 아궁이 아니라 스무 아궁이라도 때요. 나무만 대면 때기는 내가 때요.』

하고 손에 들었던 지팡이를 부지깽이 삼아 길에 깔린 많은 나무를 한편으로 밀었다. 중이 그것을 보더니, 어 그놈 불을 곧잘 『 때겠다. 그렇지마는 너무 처때면 밥은 눋고 장판은 타는 법이다.』

하고 껄껄 웃는다.

『눋는 냄새가 나면 얼른 불을 물리지요.』

하고 미륵은 부지깽이로 마른 나뭇잎을 제 앞으로 끌어 당기었다.

『하하하하, 눋는 냄새가 날 때에 불을 물리면 안 눋겠다. 하하하하, 어리석은 놈 같으니.』

『그러면 아주 태워 버리지요.』

『하하하, 그놈 우스운 놈일쎄, 어서 가자.』

하고 중은 걷기를 시작한다. 상세와 미륵도 뒤를 따른다. 중은 길을 가면서 뒤는 돌아 보지 아니하고 혼자 웃어가며,

『이놈 장판을 눌렀다 봐라. 네 껍질을 벗겨서 널 테다. 하하하하.』

하고 뚱뚱한 몸을 이찔이찔한다.

『내 껍질이 눌으면 그담에는 스님 껍질을 벗겨서 바르지요.』

하고 미륵이가 상제를 보고 눈을 꿈쩍하였다.

이 말에 중은 우뚝 서서 뒤를 돌아 보더니 미륵의 웃는 애꾸눈을 보고 또 하하하하 웃으며,

『허, 그놈 앙큼한 걸. 아무려나 내 껍질이 눋거든 얼른 냉수나 떠다 쳐라! 하하하, 엉큼한 놈 다 보겠거든.』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낙엽이 부걱부걱하는 길로 고개를 넘고 시내를 건너고 산 모퉁이를 돌고 침침한 수풀 속을 들락들락하여 마침내 병목같이 된 좁은 모퉁이를 돌아 서니 큰절의 지붕들이 질펀히 보인다. 이것이 태백산 세달사(世達寺)라는 절이다.

미륵은 중과 상제를 따라 절 법당 앞을 지나 만나는 중들에게 애꾸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십왕전(十王展) 모퉁이에 있는 초막으로 들어갔다. 초막 일각문에는「보광암(普光庵)」이라는 흰 바탕에 파란 칠한 현판이 걸렷다.

미륵은 그 중의 한 초막에서 불을 때아 주고 있게 되었다.

그 중의 이름은 허담이라고 하는 젊은 중들은 그를 「익은 스님」이라고 불렀다. 허담의 얼굴이 붉고 눈썹도 없고 머리도 훌떡 벗어진 것이 마치 삶아 낸 중 같다고 해서 그렇게 별명을 지은 것이다. 「익은 스님」하고 장난군의 젊은 중들이 부르면 곧잘 「왜야?」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어떤 때에는 「이놈들!」하고 성도 냈었다.

그러나「익은 스님」은 좀처럼 성낸 빛을 보이지 아니하고 평생 그가 늣한 눈을 벙긋벙긋 웃고 젊은 중들을 보고는 농담하고 웃기를 좋아하였다 가끔 . 중으로 입에 담지 못할 추한 소리도 하였으나 그는 일생에 계집을 접해 본 일이 없다고 누구나 허락한다.

이 스님은 날마다 별로 경을 읽는 모양도 아니 보이고 그렇다고 참선을 하는 모양도 안 보이고 그렇다고 참선을 하는 모양도 안 보이고 그저 웃고 농담하고 산으로 돌아 다니고 무엇보다도 낮잠 자기를 좋아 하였다. 아침 먹고 나서 한바탕 떠들다가 목침 하나 베고 누우면 낮이 되거나 저녁때가 되거나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세달사(世達寺)는 큰절이라 중이 오륙십명은 되었고 날마 들고 나는 객승도 일이십명은 되었다. 그러나 「익은 스님」은 누가 오거나 말거나 도무지 아랑곳 아니하고 젊은 중들과 장남하기로 세월을 보내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공경이나 대접은 못 받아도 그를 미워하는 이는 없었다.

마른 중들 같으면 이만한 나이면 권속도 여러 사람 되련마는 지렁이라는 별명 듣는 어린 상제와 미륵과 둘 밖에 없었다. 그동안에 상제도 여러 사람 정하였으나 어린 것을 길러서 낫살이나 막게 되면 대개는 달아나 버리고 어떤 놈은 돈푼 가는 세간을 훔쳐 가지고 달아나 버리고 좀 똑똑하고 글자나 말 마디나 하는 놈은 다른 중에게 빼앗겨 버렸다고 한다.

달아나거니 빼앗긴 대야 별로 슬퍼하거나 괴로와하는 빛도 없고 만일 누가 동정하는 말을 하면,

『나무아미타불 다 인연이어.』

하고 웃어 버린다.

이번에도 밥 지어 주던 놈이 달아나서 며칠 동안 「익은 스님」이 손수 밥을 짓고 불을 때던 판에 마침 미륵을 보고 붙들어 온 것이다.

미륵은 지렁이와 함께 물을 긷고 불을 때고 방과 마당을 쓸고 밤이면 막대기 스님이라는 팔십이나 넘은 귀머거리 노스님께 경도 좀 배우고 또 이따금 범패(梵唄)도 배웠으나 대개는 둘이서 장난으로 세월을 보냈다.

「익은 스님」이 낮잠 들기를 기다려 미륵은 활을 들고 지렁이는 환도를 들리고 산으로 올라 가 새도 잡고 토끼도 잡았다. 지렁이는 나이 어리나 심히 날래고 기운이 있어서 칼을 빼어 들고는 토끼나 너구리를 따라 가서는 기어이 잡고 말았다. 더구나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두 아니는 「익은 스님」 잠 들기를 기다려 부리나케 산으로 올라 갔다. 그래서 미륵이가 활을 쏘아 잡은 것, 지렁이가 칼로 쳐 잡은 것은 마른 나뭇 가지를 주워다가 불을 피워 놓고 구워서 배껏 쳐먹었다. 무론 절로 가지고 오면 살생(殺生)이라고 야단이 날 것이다. 가끔,

『이놈들 어디 갔었어?』

하고 스님께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으나 별 일은 없었고 한번은 스님이,

『이놈들아, 웬 누린내가 이리 나니?』

하고 코를 킁킁하였으나 그만하고 말았다.

허담 집에 간 지 한 달만에 미륵도 머리를 까고 중이 되었다. 막대기 스님이 웃으며 미륵더러,

『네 스님은 익은 중이니 너는 선 중이라고 하려무나.』

하는 것이 재미 있어서 미륵은 자칭 선종(善宗)이라고 하였다. 지렁이라던 상제도 소허(少許)라고 이름을 지었건마는 그 이름을 지어 준 허담 스님조차 그 이름을 잊어 버리고 「지렁아」하고 불렀다. 미륵이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애꾸야」하고만 부르고 선종이라고 점잖은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으나 선종이란 것은「선 중」이라는 뜻인 줄 알게 된 뒤에는 모두 재미 있다고 해서「선종아」하고 불렀다. 그러나 익은 스님은 자기가 지어 준「태허(太虛)」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한해 이태 지나갈수록 선종의 장난은 더욱 심하게 되었다, 비록 나 많은 중이라도 자기 맘에 들리면 곧 들이세고 그리고도 맘에 차지 안히라면 두들기도 하였다. 한번은 노전(爐殿) 중이 자기더러 재 울리러 온 시줏집 처녀를 따라 다녔다고 빈정대는 소리를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그 논전중을 당그렇게 들어다가 눈 구덩이에다가 거꾸로 박고 절구질을 하여서 사중이 크게 소동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선종은 그렇게 발끈발끈 성을 잘 내는 삶은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는 장난을 하고 사람에게 친절하였다.

다만 선종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빈정대는 것과 교만한 것과 속이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에는 선종은 얼굴이 주홍빛이 되고 숨이 씨근거리고 팔을 부르걷고,

『이놈 내가 너를 죽일란다.』

하고 대들었다. 이런 때에는 잘못한 편이 얼른 비는 것이 상책이었다.

『엑, 곰 같은 놈!』

『소 같은 놈!』

하고 한번씩 혼 나 중들은 슬슬 피해 가면서 선종이 못들을이만큼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선종은 약한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동정이 깊었다. 세 달사(世達寺) 수많은 중들 가운데 좀 젠 체하는 큰 중들은 대개 선종에게 한두 번씩 혼이 났어도, 좀 못 난 듯한 중이나 약한 중 어린 중들은 대개 선종에게 한두 번씩 혼이 났어도, 좀 못난 듯한 중이나 약한 중 어린 중들은 선종의 무슨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혹은「선종 스님」 혹은 「애꾸 스님」하고 선종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선종이 그 하소연을 들어 보아서 이치가 그럴 듯하기만 하면 마치 제 일이나 되는 듯이 분 낼 데는 분을 내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응, 해내 주마!』

하고 남의 싸움이라도 가로 맏았다.

이 모양으로 선종은 거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는 상제도 없고 돈도 없는 중이 병이 나면 밤을 새워가며 병구원을 하노라고, 약한 중이 강한 중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신 원수를 갚아 주노라고 늘 바빴다.

이러하기 때문에 세달사 중들이 선종을 미워하기도 하면서도 일변으로는 무서워하고 또 존경도 하였다. 그래서 누가 감히 선종을 건드리지 못하고 선종을 보면 힐끗힐끗 곁눈질만 하고는 슬슬 피하였다.

선종에게 혼이 난 중들은 억울한 김에 선종의 스님 되는 허담 스님께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면 허담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선종은 미륵불이라네, 모든 백성의 원통한 것을 풀어 주려고 오신 미륵불이어 하하하.』

하고 웃어 버렸다.

스님이 자기를 미륵불(彌勒佛)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선종은 맘이 솔깃하였다. 자기의 아명이 미륵인 것도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고, 또 유모의 말에 뒷대궐마마가 미륵블을 꿈에 보고 자기를 낳았다고 하던 말대궐마마가 미륵불을 꿈에 보고 자기를 낳았다고 하던 말도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였다.

<오냐. 내 어머니의 억울한 것을 풀기 위하여는 천하사람의 억울울 풀자.>

선종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괴흉한 놈, 모든 남을 해치는 놈, 모든 불의한 놈, 모든 젠 체하고 남을 못견디게 구는 놈을 모조리 대가리를 바숴 버리자 ———— 선종의 맘속에는 이런한 생각 이 들어 가게 되었다.

선종이 이 이십세기가 넘어서부터 가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무슨 깊은 생각을 하는 양을 사람들이 보았다. 그는 세달사에 들어 온 지 오륙년에 어머니의 원수도 잊어 버리고 장난에 미쳐 어름어름 세월을 보낸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또 남아가 이십이 넘도록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싸움이나 하고 지나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자기보다도 세 살이나 나이 어린 소허(少許)가 힘써 글 공부를 하고 밤이면 몰래 모양을 볼 때에 더욱 부끄러웠다. 대체 지렁이는 밤마다 어디를 가는고————선종은 이것이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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