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파리/개벽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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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름내 지방지방을 바삐 돌아단이느라고 한가한 틈이 족음도 업서서 하랴던 일을 못한 것이 만핫다. 개벽사 눈 큰 선생님의 그 둥글한 눈이 클대로 커지는 것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미안도 하지마는 참으로 틈이 업섯던 것을 어쩨랴. 그 대신 보아둔 것들 어둔 겻은 만핫다.

무엇 어쨰? 녀름이 다가서 파리의 시절도 지나갓다고!? 오오 그리고 안심만 하고 잇거라. 더도 덜도 업시 꼭 정월 초하루 날 탄생한 『銀』파리시다. 서리가 오고 눈이 쏘다져도 銀파리의 원기는 쇠하지 안는다.

청년웅변가 청년사상가를 겸한 외에 독실한 종교가로까지 고명한 고(高)선생을 본댁으로 차저 가니까 고선생이 마악 대문을 나선다.

힌 구두 힌 바지 우에 검은 웃옷을 날씬히 입고 새파란 넥타이에 각(角)테 안경 비스듬한 맥고모(麥藁帽), 고명한 명호를 모르고 보면 누가 보던지 팔(八)란봉의 대수석(大首席)이지만 명예란, 조흔 것, 알고 보는 이에게는 훌륭한 모범청년 청년유지이다. 구변이 비범하고 사상이 고상하고 신앙이 독실하고 입으로 붓으로 행동으로 닷는대로 고명한 고선생! 그가 지금 어대를 향하는지 자기집 대문을 나선다.-사람이란 놈들이 아모리 거짓말로 살아가고 아모리 거짓말을 잘한대도 사상가요, 종교가인 이 고선생이야 족음쯤은 다른 점이 잇겟지… 아모려나 오늘은 이 선생의 미행을 해보자고 딸아 나섯다.-그러나 미행이라도 낫닉은 사람 뒤에 개새끼 따르듯하는 형사의 미행과는 다르다. 편안하고 시원하게 고선생의 향수내가 나는 양복 억깨 우에 올라 안저서의 미행일다.

불령파리의 미행이 딸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은 그리 길지도 안흔 다리를 길죽길죽 거러 서양사람 흉내 가튼 거름으로 계동(桂洞)어구에 이르러 어느 대문 큰 와가(瓦家) 집에를 들어가니 동행 1인이 생겻다. 그는 서울 시외에 잇는 어느 전문학교 학생이시다. 두 분이 보조를 가티 해가면서 일기 더운 이악이 장충단 신공원 이악이 예배당 이악이 등을 속살거리는 동안에 교동중턱에 이르럿다. 전문학교 학생인 최씨가 주춤하더니 길갓 간판 이상한 잡화상점(알고보니까 부인상점)으로 쑥 들어갓다. 나는 고선생이 길거리에 선 채로 그 우에 안즌 채로 길거리에서 기다렷더니 이윽고 최씨가 하-얀 손수건을 들고 나와서 고에게 보이며 거르면서

『아, 이게 40전이야…?! 원주인은 어대를 갓는지 그림자도 안보이고 웬 다-늙은 노파가 나와서… 에엥. 그러타고 안 산다고 돌우 나오나 어쪄나… 공연히 돈만 비싸게 냇는걸…』 한다.

갑은 비싸도 젊은 여자가 팔면 산다…, 딴은 그럴듯도 한 일이다. 분(粉)빡을 쓴 젊은 여자가 고흔 손으로 집어 준다는 그것만으로 일종 만족을 느끼는 변태성욕의 소유자가 여자에게 산 그 수건을 일생의 호신부(護身符)가티 위하야만 두면 어느 때까지던지 해여지지도 안코 더럽을 염려도 업고 딸아서 자조 살 필요도 업슬 것이다. 사람이란, 약은 놈-그 중에도 전문학생이라 귀한 돈 절용(節用)하는 꾀가 그럴 듯도 한 일이다.

이 두 분이 탑동공원을 꿰뚤허 정문으로 나서자 어떤 신사 한 분이 반가운 낫을 꾸미면서 달겨들어 고선생의 손을 잡아 흔든다. 고선생도 몹시 반가운 이를 의외로 맛난 듯이 달겨들어 손과 손을 마조 흔든다.

자미 조흐심니까. 얼마나 바뿌십니까. 사회를 위해 노력 만히 하십니다. 어쩜니다. 천만에요-이러케 하로에도 몃 번씩 맛나는 대로 외여두고 되풀이하는 일정한 격식대로의 인사가 끗난 후 그 신사가

『그 말슴한 원고는-대단이 분망하시겟지마는…』

아마 어느 잡지편집원인가 보다. 고씨는

『녜-참 미안합니다. 바빠서… 내일 모-레쯤은 되겟습니다』 하니까 그는 쓴다는 것만 감사하야

『녜! 매우 바뿌시겟지요. 그럼, 모레 오후에 가겟습니다. 이거 대단 미안합니다. 아-참 오늘 저녁에 OO예배당에서 강연을 하시게 되엇다지요? 신문에서 보앗습니다. 일곱 시 반부터라지요? 잇다 저도 가겟습니다. 참 일 만이 하십니다…』 벌서 피차에 할 말도 업는 모양이나 서로 어름어름 하고만 섯는 꼴이 피차 업시 저 편에서 먼저 가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한참 서로 어릿대다가 그가 먼저

『바뿌실 터인데 실례 만히 햇씁니다. 잇다 또 뵙겟습니다』 시원한 듯이 인사를 바꾸고 허여저서 고선생과 최씨는 전차를 기다리고 섯다. 이윽고 최씨가

『그게 누구요. 우(禹) 머시 아니요?』

『몰나 그 자가 우(禹)간가?』 최씨가 깜작 놀라며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이악이를 하얏소』

『어대서 보긴 한번 본 사람이야』

『그럼 누구냐고 애초에 모른다고 할 것이지』

『이 사람아. 교제상 그런 일이 어대 잇나. 그런 실례가 어대 잇나. 어쨰던가 그러케 아는 체-해두면 그만 아닌가? 원고? 원고는 또 그때 맛나서 이악이할 일이고…』

고선생도 이럴 줄은 몰랏다. 무에 교제고 무에 예의인지 인간의 일이란 참말 알 수 업는 것이다. 아무래도 관계챤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짓말을 퍼부어라. 그게 교제고 그게 예의라고 놈들은 시침이를 뚝 뗀다. 고선생, 사상가 종교가 역시 그 꼴일다. 놈도 사람이란 것인 이상 다를 것이 잇슬 리가 잇느냐.

밤낫 미행해 간대야 별달리 시원할 것도 업슬 것이나 대체 이 자들이 어대를 가는가. 아즉 그냥 가볼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종로에서 오는 동대문행 전차에 올랏다. 오후 세시 뜨거운 낫을 피하야 청량리 가는 손이 차에 빽빽하게 찻다.

동대문 미테서 모다 쏘다저 나리고 오즉 고(高)와 최(崔) 두 사람 외에 일본 사람 하나가 남아 세 사람만 남은 차는 성(城)길로 광희문쪽으로 향하야 훈련원 모통이에 다핫다. 高 崔는 나려서 왕십리행 전차를 바꿔타고 가다가 왕십리 학교를 지나 왕십리 마을 등뒤 알엣 모통이에서 나려서 신작로 남쪽 밧고랑길로 떨어저 걸엇다. 나리 쪼이는 뜨거운 밧길을 한참 거러 화장터 가튼 솔밧속으로 들어가 OO寺압 어느 깨끗한 초가 집으로 인사도 업시 쑥 들어갓다. 먼저 온 선발대가 와 잇섯던 모양이라 마루우에서 우덩우덩 일어나며 야-야-인제 나오나 인제 나오나 하는 세 사람 선착자 중에는 머리 덥북하게 길른 철인가튼 시인가튼 청년도 잇섯다. 그것보다도 여긔에 특서할 것은 崔상 어서 나오십시요. 고선생님 인제 오십니까? 하는 여성이 두 사람이나 잇섯던 일이다.

검은 치마에 양식틀에 머리 어느 곳 여학생인가 햇더니 하나는 부용(芙蓉)이 하나는 소홍(小紅)이라던가. 거긔에 안즌 머리 긴 철인의 설명에 의하면 사랑의 여신 애(愛)의 권화인생에 가장 귀하고 가장 사랑스런 꼿이라 한다. 사랑스런 꼿인지 돈의 독안이인지 내가 알 까닭업스나 독실한 신자로 고명한 고선생 방금 OOO웟 청년회 총무인 고선생이 이런 주석에 참석할 것 갓지는 안핫는데… 웬걸 웬걸 독한 소주를 보시기로 마신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웃통을 벗고 기생을 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토하고 또 먹고 먹고 또 뛰고 술이 만히 들어갈스록 놈들의 가장가면이 벗겨지기 시작을 하엿다. 예절, 체면, 교제, 무엇무엇으로 싸고 또 싸고 하야 사상가니, 종교가이니 교제가이니 하는 비단옷을 입고 단이던 놈들을 술이란 마물이 수단잇게 벗기기 시작을 하엿다. 종교가도 사상가라는 가면도 벌서 벗겨젓다. 체면, 교제, 예의도 다 벗겨젓다. 놈들은 의례껏 하는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실례올시다 등 언구(言句)도 모다 이저 버렷다. 지금쯤은 아모것도 잇지 아니하다. 밝아벗은 사람이란 몸둥이뿐이다. 식욕, 성욕, 무슨 욕 무슨 욕이 날뛸 대로 날뛴다.

처음 밝아벗은 본래의 사람이란 꼴을 나는 오늘 보앗다. 만물의 영장도 업다. 사람이란 별다른 특색도 업다. 오즉 거짓 허위란 것으로 이리 숨기고 저리 싸고 하야 도덕도 잇는 체 예절도 잇는 체하여 영장이니 무어니 하엿다. 저러케 망측하게 날뛰고 덜뛰고 하는 차이는 사람에게 딸아 잇겟지. 그러나 결국 오십보백보일다. 보아라. 종교가 사상가란 옷을 벗어 버리고 뛰는 저 꼴을 보아라. 숫컷 다섯 놈이 임컷 둘을 에워 싸가지고 날뛰는 꼴을 보아라. 인간이나 강아지떼나 어대 어느 점이 달으냐. 예의 체면이 저 꼴에 잇슬 듯 십흐냐. 저것 보아라. 벌서 이놈 저놈 한다. 이놈하고 부르고 미안해도 아니하고 저놈 소리를 듯고도 노하지도 안는다. 그 소리를 당연히 듯는다. 인간이란 원래 저것일다. 그리고 놈들은 하도 거짓 세상에서 속힘으로만 살다가 모든 가장을 쓰고 놀다가 저러케 날뛰고는 통쾌하다 한다.

어느 것이 정말인지 알 길 바이 업다.

뛰다 뛰다 못하야 지처서 안꼬 잣바지고 하엿다. 그러케 술을 마시고 얼굴에 붉은 기운도 업는 O웟 청년회 총무 고선생이 술상을 임시 연탁 대용으로 음식 접시 술잔 업허진 것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고선생 일류의 강연체로 무슨 소린지 떠들기 시작하엿다. 기생 무릅을 비고 누은 자가 「대동강변」을 부르기 시작하엿다. 한 자가 「노-돌 강변 비닭이 한 쌍」을 부른다.

고선생은 무슨 연설을 한참이나 하나 다만 드믄드믄이 상제가 우리에게 주신 감주와 여자 우리 인생된 자 맛당히 꺽고 마실 것이다!! 큰소리로 절규하고는 깔깔 웃는다. 올타올타 하고 마루바닥을 두들긴다. 의기 떨치는 고선생은 별안간에 무엇을 생각한듯키

『아 참 내가 제군에게 소개할 것이 잇다. 이놈아. 일어나거나. 응? 일어나 내가 소개해 줄 것이 잇다』 하고는 열심으로 누은 자를 일으켯다. 무어야 머야 하는 소리가 퍼부엇다. 고선생은 술상을 탁 치고

『제군 우리에게는 한 비밀결사가 잇섯다』

『무어냐 무어냐 무슨 결사냐-』

『그것은 이때까지 절대비밀이엇섯는데 오늘 우리가 이와 가티 동지끼리만 모여서 질겁게 노는 기념 아니 대특전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한하야 공개하네…』

어떤 자가 기생 손을 붓잡아 처들며 만세를 불럿다.

『그 비밀결사는- 내가 이 결사를 공개할 터이니 너의가 술을 한 잔씩 부어라.』

남아지 네 놈이 한 잔씩 부엇다. 그것을 한 잔 마시고

『그 비밀결사는 「재 산 주 식 회 사」라는 것이란다』

여러 놈이 그게 무슨 회사냐고 뭇는다.

『그것은 즉 財 散 酒 食 會 社일세』

하고 한 자 한 자씩 부르니까

찬성! 찬성! 하고들 날뛴다. 고는 다시

『그런데 내가 그 회사의 간사일세. 그런즉 제군도 찬성이면 입회하기를 바라네. 지금 회원이 네 사람일세. 위선 입회수속은 먼저 모든 회원에게 한턱내는 것이며 그러면 그 다움에는 일동이 새 회원 맛는 인사로 또 한턱내느니…, 제군 그러나 이것은 절대 비밀일세. 응. 아즉 세상놈들은 그런 것을 이해를 못하니까 비밀히 할밧게 업네…』

딴은 놈이 사상가일다. 묘한 것을 생각해 내엇다. 財散酒食회사 맘껏 긔껏 짐승가티 뛰노는 회(會)겟지.

해가 젓다. 그 중에도 고선생이 강연하러 간다고 일어선다. 「여보게. 오늘은 그만두게. 저러고 어떠케 하나」 하니까 「아니. 지난달 초승에도 한번 이런 일이 잇섯는데 무사히 잘 햇는데 자-먼저 가네」하고 가는데 잣바즌 채로 머리 긴 놈이 「연제(演題)는 무언가」 하니까 高가 「연제? 어-인생의 진생활(眞생활)일세」 하면서 나갓다. 「흥 인생의 진생활-조흐니 술먹고 연애하고 그게 진생활이라고 가서 그러게. 우리처럼 이러케 사는 게 진생활이라고 그러게. 그러면 박수 밧네」 혼자 잣바저서 중얼거린다.

난취(亂醉)!! 또 그는 종교가 행세하느라고 사상가 행세하느라고 이 자리에서 먼저 빠저간 고선생은 이윽고 OO예배당 단상에서 신앙의 신성을 부르지즐 것이다. 불상한 수만흔 청중은 그 소리 구구절절에 손벽을 치고 감격해 하리라.

아아 이 무슨 참담한 기현상이냐. 이 어찐 세상의 꼴이냐. 이런 중에 놈들은 살아가는 것일다.

부용이와 소홍이를 중심으로 하고 목껏 노래를 부르더니 그것도 그치고 들어들 누웟다. 이번에는 머리 긴 철인(哲人)인지가 떠들기를 시작하엿다. 「부용이 나하고 정사(情死) 안하련?」「왜요」「하하. 왜요 하니 될 수가 잇나. 사랑에서 나서 사랑하다가 사랑으로 죽는 이태리 청년은 참말 행복자이란 말야. 흙잇는 곳에 반듯이 풀이 잇고 사람잇는 곳에 반듯이 사랑이 잇다는 것인데 그게 업스니까 생활이 쓸쓸할 밧게 잇나? 만일 이 세상에 여성이란 것을 업새고 보면 그 세상이 어찌될 것인가. 차고 차고 어름가튼 세상이 될 것일세. 인생으로 태워난 우리가 따뜻한 봄가튼 사랑의 세계에서 살 것인가. 그것 저것도 업시 칩고 쓸쓸한 빙(氷)세계에서 살 것인가? 그러치 안흐냐. 부용아 웅 그러치 안하?」하면서 들어눈 채로 안즌 부용의 얼골을 끌어 잡아다 자기 뺨에다 다여 보앗다. 다른 자들은 코노래를 하다 말고 『올타올하. 대단히 올흔 말이다』하니까 머리 긴 자는 기운이 나서 『그러기에 우리가 이번에 발기하는 수양회에는 여자도 입회를 허락하잔 말이야』 『아니 허락이 아니라 끌어다 너허야 하네』 한 놈이 떠들엇다. 『그래 발기회날 그러기로 하세』

어떠냐. 이런 자들이 이런 생각으로 이러케 떠들다가 결국 청년수양회니 무어니 하고 남의 흉내를 낸다. 말하면 부랑자들이 모여서 란봉 도가(都家)를 맨들고 문패는 남 하는 대로 대서(大書) 왈 무슨 청년수양회라-한다.

무얼 너가튼 놈들이 수양회라는 것을 운위해서 어쪄게. 진작 고선생의 財散酒食식으로 정직하게 「請戀隨孃會」라고 쓰는 게 올치 안흐냐. 그리고 그 문패를 등지고 멸망의 구멍을 더 크게 더 깁게 파라. 그것이 너이의 유일한 길일 것일다.

쓰든 길이니 마저 쓴다. 국일관 명월관 등 경성요리점의 이층 방과 방 사이의 장자(障子)에 누가 썻는지

「사랑, 돈-, 돈, 사랑-

나는 울고야 말앗다. 어떠케 하는 수가 업서서」

이러케 씨여 잇다. 어떤 머리털 긴 시인인지 철인(哲人)인지가 엽헷 방에 기생노리를 장지 틈으로 엿보고 다리를 꼬으면서 토한 탄구(嘆句)인 모양일다.

아아 불상한 자들아. 넘우도 심하지 아니하냐!

황막한 폐허에 서서 거룩한 새 조선을 건설할 자가 누구이냐. 깨이기 시작한 민중의 틈에서 너이는 너이의 입으로 부르짓지 안느냐.

우리의 새 문화는 우리의 손으로라야 건설한다고!

과연일다. 귀여운 젊은 피로써 갑하지 안코는 엇지 못할 것일다.

족음 더 진실하라. 족음 더 의의(意義) 잇스라

타골-은 말한다.

『마음에 공포 업시 머리를 드는 곳! 그곳에 자유로운 지식이 잇다고…』

젊은이들아. 좀 더 마음에 부끄럽지 안흔 일을 못하겟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