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V - On Samādhi[2]
제4장 사마띠(Samādhi,삼매三昧)[3][4][5][6][7][8]
[4.1]Salutation to the Gurū, the dispenser of happiness to all, appearing as Nāda, Bindū and Kalā! One, who is devoted to Him, obtains the highest bliss.
나다Nāda[9][10][11], 빈두Bindū[12] 및 칼라Kalā[13][14]로 나타나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구루Gurū(스승master)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분께 헌신하는 사람은 최고의 행복을 얻습니다.[15]
[4.2]Now I will describe a regular method of attaining to Samādhi, which destroys death, is the means for obtaining happiness, and gives the Brahmānanda.
이제 나는 죽음을 파괴하고 행복을 얻는 수단이며 브라흐마난다[16]를 주는 사마띠(Samādhi)에 도달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17][18][19]
[4.3][4.4]Raja Yogī, Samādhi, Unmani, mauonmanī, Amarativa, Laya, Tatwa, Sūnya, Aśūnya, Parama Pada, Amanaska, Adwaitama, Nirãlamba, Nirañjana, Jīwana mukti, Sahajā, Turyā, are all synonymous.
라자 요기,사마띠,운마니,마우온마니,아마라티브,라야,타트와,수냐,아수니아(아수니야),파라마 파다,아마나스카,아드와이타마,
니랄람바,니란자나,지와나 묵티,사하자,투리야는 모두 동의어입니다.
[4.5]As salt being dissolved in water becomes one with it, so when ātmā and mind become one, it is called Samādhi.
소금이 물에 녹아 물과 하나가 되듯이, 아뜨마(ātma(n) आत्म(न्)또는 아트마)[20]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사마띠(Samādhi)라고 합니다.
[4.6]When the Prāna becomes lean (vigourless) and the mind becomes absorbed, then their becoming equal is called Samādhi.
프라나가 가늘어지고(활력이 잠잠해 가면) 마음에 흡수될 때, 둘이 같아지는(하나가 되는) 것을 사마띠(Samādhi)라고 합니다.[21]
[4.7]This equality and oneness of the self and the ultra self, when all Samkalpas cease to exist, is called Samādhi.
모든 삼칼파(Samkalpa)[22]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자아와 초자아[23]의 평등과 하나됨을 사마띠(Samādhi)[24][25]라고 합니다.[26][27][28][29][30]
[4.8]Or, who can know the true greatness of the Raja Yoga. Knowledge, mukti, condition, and Siddhīs can be learnt by instructions from a gurū alone.
그렇지 않으면 라자 요가의 진정한 위대함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앎[31], 묵티(mukti), (평화로운)상태, 싯디(Siddhīs)는 구루의 지시만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4.9]Indifference to worldly enjoyments is very difficult to obtain, and equally difficult is the knowledge of the Realities to obtain. It is very difficult to get the condition of Samādhi, without the favour of a true guru.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무관심은 얻기가 매우 어렵고, 현실에 대한 지식도 얻기가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진정한 구루의 도움 없이는 사마띠(Samādhi)의 상태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4.10]By means of various postures and different Kumbhakas,when the great power (Kundalī) awakens, then the Prāna becomes absorbed in Sūnya (Samādhi).
다양한 자세(아사나)와 다양한 쿰바카Kumbhaka(항아리)를 통해 큰 힘(Kundalī)이 깨어날 때 프라나는 수니야Sūnya(Samādhi)에 흡수됩니다.
[4.11]The Yogī whose śakti has awakened, and who has renounced all actions, attains to the condition of Samādhi, without any effort.
샥티(샤크티)가 깨어나고 모든 행위를 멈춘 요기(Yogī)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사마띠(Samādhi)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4.12]When the Prāna flows in the Susumnā, and the mind has entered śūnya, then the Yogī is free from the effects of Karmas.
프라나가 수숨나Susumnā로 흐르고 마음이 수니야śūnya에 들어가면 요기는 카르마[32]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집니다.
[4.13]O Immortal one (that is, the yogi who has attained to the condition of Samādhi), I salute thee! Even death itself, into whose mouth the whole of this movable and immovable world has fallen, has been conquered by thee.
오 불멸의 존재(즉, 사마띠의 경지를 얻은 수행자)이시여, 나는 당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움직이거나 (또는)움직일 수 없는 이 세상 전체가 그 입 속으로 떨어진 죽음마저도 당신께 정복당했습니다.
[4.14]Amarolī, Vajrolī and Sahajolī are accomplished when the mind becomes calm and Prāna has entered the middle channel
아마롤리Amarolī, 바즈롤리Vajrolī 및 사하졸리Sahajolī는 마음이 고요해지고 프라나가 중간 채널[33]에 들어갈 때 달성됩니다.
[4.15]How can it he possible to get knowledge, so long as the Prāna is living and the mind has not died? No one else can get moksa, except one who can make one's Prāna and mind latent.
프라나가 살아 있고 마음이 죽지 않은 한, 그가 어떻게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까? 자신의 프라나와 마음을 잠재적으로(의식이 비의식과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목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4.16]Always living in a good locality and having known the secret of the Susumnā, which has a middle course, and making the Vāyu move in it., (the Yogī) should restrain the Vāyu in the Brahma randhra.
항상 좋은 지역에 살면서(위치를 점하면서) 중간 과정이 있는 수숨나(Susumnā)의 비밀을 알고 그 안에서 바유(Vāyu)를 움직이게 한 요기(요기)는 브라흐마 란드라에서 바유를 억제해야 합니다.
[4.17]Time, in the form of night and day, is made by the sun and the moon. That, the Susumnā devours this time (death) even, is a great secret.
밤과 낮의 형태인 시간은 해와 달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수숨나(Susumnā)가 이 시간(죽음)을 먹어치운다는 것은 큰 비밀입니다.
[4.18]In this body there are 7,000 openings of Nādis; of these, the Susumnā, which has the Śāmhhavī Sakti in it, is the only important one, the rest are useless.
이 몸에는 나디스(나디들)의 구멍이 7,000개 있습니다. 이들 중 삼하비 샥티Śāmhhavī Sakti가 포함된 수숨나Susumnā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며 나머지는 쓸모가 없습니다.
[4.19]The Vāyu should be made to enter the Susumnā without restraint by him who has practised the control of breathing and has awakened the Kundali by the (gastric) fire.
바유Vāyu는 호흡 조절을 수행하고 (위의) 불로 쿤달리Kundali를 깨운 사람에 의해 제한 없이 수숨나Susumnā에 들어가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4.20]The Prāna, flowing through the Susumnā, brings about the condition of manonmanī; other practices are simply futile for the Yogī.
수숨나(Susumnā)를 통해 흐르는 프라나는 마논마니(manonmanī)의 상태를 가져옵니다. 다른 수행법은 요기(Yogī)에게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4.21]By whom the breathing has been controlled, by him the activities of the mind also have been controlled; and, conversely, by whom the activities of the mind have been controlled, by him the breathing also has been controlled.
호흡을 조절하신 분에 의해 마음의 활동도 조절되었습니다. 반대로 마음의 활동을 통제하는 (그)분에 의해 호흡도 통제됩니다.
[4.22]There are two causes of the activities of the mind: (1) Vāsanā (desires) and (2) the respiration (the Prāna). Of these, the destruction of the one is the destruction of both.
마음 활동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1) 바사나(욕망)와 (2) 호흡(프라나). 그중 하나의 멸망은 둘 다의 멸망입니다.
[4.23]Breathing is lessened when the mind becomes absorbed, and the mind becomes absorbed when the Prāna is restrained.
마음이 흡수되면 호흡이 줄어들고(잦아들다), 프라나가 억제되면 마음이 흡수됩니다.
[4.24]Both the mind and the breath are united together, like milk and water; and both of them are equal in their activities. Mind begins its activities where there is the breath, and the Parana begins its activities where there is the mind.
마음과 호흡은 우유와 물처럼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둘 다 활동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마음은 호흡이 있는 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파라나는 마음이 있는 곳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4.25]By the suspension of the one, therefore, comes the suspension of the other, and by the operations of the one are brought about the operations of the other. When they are present, the Indriyas (the senses) remain engaged in their proper functions, and when they become latent then there is moksa.
그러므로 하나가 정지되면 다른 것도 정지되고, 하나가 작동하면 다른 것도 작동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존재할 때 인드리야(감각)는 적절한 기능을 계속 수행하고, 잠복해 있을 때 목사가 있습니다.
[4.26]By nature, mercury and mind are unsteady: there is nothing in the world which cannot be accomplished when these are made steady.
본질적으로 수은(Hg)[34]과 정신은 불안정합니다. 이 두 가지가 안정되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4.27]O Pārvati! Mercury and breathing, when made steady, destroy diseases and the dead himself comes to life (by their means). By their (proper) control, moving in the air is attained.
오 파르바티! 수은(Hg 또는 체온)[35]과 호흡이 안정되면 질병을 없애고 죽은 사람도 살아납니다. 이들의 (적절한) (호흡에서) 획득된 공기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가능해집니다.
[4.28]The breathing is calmed when the mind becomes steady and calm; and hence the preservation of bindu. The preservation of this latter makes the satwa established in the body.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지면 호흡도 고요해집니다. 따라서 빈두가 보존됩니다. 후자를 보존하면 사트와(satwa)가 몸에 확립됩니다.
[4.29]Mind is the master of the senses, and the breath is the master of the mind. The breath in its turn is subordinate to the laya (absorption), and that laya depends on the nāda.
마음은 감각의 주인이고, 호흡은 마음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호흡은 라야[36][37]에 종속되고, 그 라야는 나다(nāda)에 의존합니다.
[4.30]This very laya is what is called moksa, or, being a sectarian, you may not call it moksa; but when the mind becomes absorbed, a sort of ecstacy is experienced.
바로 이 라야가 목사(moksa)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또는 (다른)종파주의자(이거나 또는 아니거나)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목사라고 부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흡수되면 일종의 황홀경(또는 정서적 안정감)이 경험됩니다.[38][39]
[4.31]By the suspension of respiration and the annihilation of the enjoyments of the senses, when the mind becomes devoid of all the activities and remains changeless, then the Yogī attains to the Laya Stage.
호흡이 멈추고 감각의 즐거움이 소멸되어 마음에 모든 활동이 없어지고 변함이 없을 때 요기는 라야 단계에 도달합니다.
[4.32]When all the thoughts and activities are destroyed, thenthe Laya Stage is produced, to describe which is beyondthe power of speech, being known by selfexperience alone.
모든 생각과 활동이 파괴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 경험만으로 알 수 있는 단계를 설명하는 라야 단계가 생성됩니다.
[4.33]They often speak of Laya, Laya; but what is meant by it?
그들은 종종(곧잘) 라야Laya, 라야Laya(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4.34]Laya is simply then forgetting of the objects of senses when the Vāsanās (desires) do not rise into existence again.
라야는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바사나(욕망)가 또다시 존재로서 일어나지 않을 때 그때 감각의 대상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4.35]The Sāmbhavī mudrā
삼바비 무드라
The Vedas and the Śāstras are like ordinary public women. Śāmhhavī mudrā is the one, which is secluded like a respectable lady.
베다Vedas와 사스트라Śāstras는[40] 일반인 여성과 같다고 말한다면 삼바비 무드라Śāmbhavī mudrā는 존경받는 여인처럼 만나기 어려운 사람일 것입니다.
[4.36]Aiming at Brahman inwardly, while keeping the sight directed to the external objects, without blinking the eyes, is called the Sāmbhavī mudrā, hidden in the Vedas and the Sāstras.
눈을 깜박이지 않고 외부 대상을 향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브라만을 겨냥하는 것을 삼바비 무드라(Sāmbhavī mudrā)라고 하며, 베다와 사스트라에 숨겨져 있습니다
[4.37]When the Yogī remains inwardly attentive to the Brahman, keeping the mind and the Prāna absorbed, and the sight steady, as if seeing everything while in reality seeing nothing outside, below, or above, verily then it is called the Sāmbhavī mudrā, which is learnt by the favour of a guru. Whatever, wonderful, Sūnya or Asūnya is perceived, is to be regarded as the manifestation of that great Śambhū (Śiva.)
요기(Yogī)가 브라만에게 내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과 프라나를 흡수하고 시야가 안정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보는 것처럼 유지될 때, 실제로는 외부, 위, 아래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이를 삼바비 무드라(Sāmbhavimudra)라고 합니다. 스승님의 은혜로 배웠습니다. 수니야Sūnya 또는 아수니아Asūnya가 인식되는 놀라운 것은 무엇이든 그 위대한 삼바부Śambhū(시바Śiva)[41]의 (무언가)를 인식하거나 의식(깨닫게 되거나 이해)하게 됩니다.
[4.38]The two states, the Sāmbhavī and the Khecharī, are different because of their seats (being the heart and the space between the eyebrows respectively); but both cause happiness, for the mind becomes absorbed in the ChitasukhaRupaātmana which is void.
두 주인 삼바비Sāmbhavī와 케차리Khecharī는 좌석(각각 심장과 눈썹 사이의 공간) 때문에 다릅니다. 그러나 둘 다 행복을 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공허한 치타수카루파아트마나Chita-sukha-Rupa-ātmana[42]에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4.39]The Unmanī
운마니
Fix the gaze on the light (seen on the tip of the nose) and raise the eyebrows a little, with the mind contemplating as before (in the Śambhavī mudrā that is, inwardly thinking of Brahma, but apparently looking outside.)
This will create the Unmanī avasthā at once.
빛(코 끝에 보이는)에 시선을 고정하고 이전처럼 마음으로 명상하면서 눈썹을 조금 올리십시오(샴바비 무드라에서는 내부적으로는 브라흐마[43]를 생각하지만 외관상으로는 외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운마니 아바스타Unmanī avasthā가 즉시 생성됩니다.
[4.40]The Tāraka
타라카
Some are devoted to the Vedas, some to Nigama, while
others are enwrapt in Logic, but none knows the value
of this mudrā, which enables one to cross the ocean of
existence
일부는(어떤이는) 베다[44][45]에 헌신하고, 일부는(어떤이는) 니가마(nigama)[46][47]에 헌신하고, 다른 일부는(또다른 이는) (과학적으로)논리학에 둘러싸여 있지만, 존재의 바다를 건너게 해주는 이 무드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4.41]With steady calm mind and half closed eyes, fixed on the tip of the nose, stopping the Idā and the Pingalā without blinking, he who can see the light which is the all, the seed, the entire brilliant, great Tatwama, approaches Him, who is the great object. What is the use of more talk?
꾸준하고 고요한 마음과 반쯤 감은 눈을 코 끝에 고정하고, 이다(Idā)와 핑갈라(Pingala)를 깜박이지 않고 멈추면서, 모든 것, 씨앗, 온전하고 찬란하고 위대한 타트와마(Tatwama)인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분께(그것에) 다가갑니다. 위대한 대상은 누구입니까? 더 많은 말을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4.42]One should not meditate on the Linga (i.e., ātman) in the day (i.e., while Sūrya or Pingalā is working) or at night (when Idā is working), but should always contemplate after restraining both.
낮(즉, 수리야(Sūrya)나 핑갈라(Pingalā)가 일하는 동안)나 밤(이다(Idā)가 일하는 동안)에 링가(즉, 아트만)를 명상해서는 안 되지만, 두 가지를 항상 억제한 후에 명상해야 합니다.
[4.43]The Khecharī
케차리
When the air has ceased to move in the right and the left nostrils, and has begun to flow in the middle path, then the Khecharī mudrā, can be accomplished there. There is no doubt of this.
공기가 오른쪽과 왼쪽 콧구멍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가운데 길로 흐르기 시작하면 그곳에서 케차리 무드라(Khecharī mudrā)가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4.44]If the Prāna can he drawn into the Sūnya (Susumnā), which is between the Idā and the Pingalā, and male motionless there, then the Khecharī mudrā can truly become steady there.
만약 프라나가 이다(Idā)와 핑갈라(Pingalā) 사이에 있는 수숨나(Susumnā)로 끌어들여 남성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케차리 무드라(Khecharī mudrā)는 그곳에서 진정으로 안정될 수 있습니다.
[4.45]That mudrā is called Khecharī which is performed in the supportless space between the Sūrya and the Chandra (the Idā and the Pingalā) and called the Vyoma Chakra.
그 무드라는 수리아Sūrya와 찬드라Chandra(이다Idā와 핑갈라Pingalā) 사이의 지지가 없는(supportless) 공간에서 수행되고 비요마 차크라Vyoma Chakra라고 불리는 케차리Khecharī라고 불립니다.
[4.46]The Khecharī which causes the stream to flow from the Chandra (Śoma) is beloved of Śiva. The incomparable divine Susumnā should be closed by the tongue drawn back.
찬드라(Śoma) 강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게 하는 케차리(Khecharī)는 시바가 사랑하는 강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한 수숨나(Susumnā)는 뒤로 당겨진 혀로 (목구멍이)닫혀야 합니다.(그러면 오직 하나의 강(river)으로 즉 기도(氣道)로만 프라나가 흘러들어갑니다)
[4.47]It can be closed from the front also (by stopping the movements of the Prāna), and then surely it becomes the Khecharī. By practice, this Khecharī leads to Unmanī.
그것은 앞에서도 닫힐 수 있으며(프라나의 움직임을 멈춤으로써) 그러면 확실히 케차리(Khecharī)가 됩니다. 실제로 이 케차리Khecharī는 운마니Unmanī로 이어집니다.
[4.48]The seat of Śiva is between the eyebrows, and the mind becomes absorbed there. This condition (in which the mind is thus absorbed) is known as Tūrya, and death has no access there.
시바의 자리는 눈썹 사이에 있고 마음은 거기에 몰입됩니다. 이 상태(마음이 흡수된 상태)는 투리야Tūrya[48]로 알려져 있으며, 거기에는 죽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4.49]The Khecharī should be practised till there is Yoganidrā (Samādhi). One who has induced Yoganidrā, cannot fall a victim to death.
케차리Khecharī는 요가니드라Yoganidrā(사마띠Samādhi)가 생겨날때까지 수행되어야 합니다. 요가니드라Yoganidrā를 유도한 사람은 죽음의 희생자가 될 수 없습니다.
[4.50]Freeing the mind from all thoughts and thinking of nothing, one should sit firmly like a pot in the space (surrounded and filled with the ether).
(이것은)모든 생각에서 마음을 해방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공간(에테르[49]로 둘러싸여 가득 차 있는)에 항아리(kumbhaka)처럼 굳건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4.51]As the air, in and out of the body, remains unmoved, so the breath with mind becomes steady in its place (i.e., in Brahma randhra).
몸 안팎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있는 호흡도 그 자리(즉, 브라흐마 란드라)에서 안정됩니다.
[4.52]By thus practising, night and day, the breathing is brought under control, and, as the practice increases, the mind becomes calm and steady.
이렇게 수행함으로써 밤낮으로 호흡이 통제되고, 수행이 증가할수록 마음은 고요하고 안정됩니다.
[4.53]By rubbing the body over with Amrita (exuding from
the moon), from head to foot, one gets mahākāyā, i.e.,
great strength and energy.
암리타(달에서 흘러나오는)로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지르면 마하카야, 즉 큰 힘과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End of the Khecharī[50]
케차리 끝.
[4.54]Placing the mind into the Kundalini, and getting thelatter into the mind, by looking upon the Buddhi (intellect) with mind (reflexively), the Param Pada (Brahma) should be obtained.
마음을 쿤달리니에 두고 후자를 마음에 가져가면서 마음(반사적으로)으로 붓디(지성)를 바라봄으로써 파람 파다(브라흐마)를 얻어야 합니다.
[4.55]Keep the ātmā inside the Kha (Brahma) and place Brahma inside your ātmā. Having made everything pervaded with Kha (Brahma), think of nothing else.
아트마를 카(브라흐마) 안에 두고 브라흐마를 아트마 안에 두세요. 모든 것에 카(브라흐마)가 스며들게 하고 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4.56]One should become void in and void out, and voice like a pot in the space. Full in and full outside, like a jar in the ocean.
안과 그릭 밖이 하나로 공이 되어야 하며, (이처럼)공간 속의 항아리처럼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또한)바다 속의 항아리처럼, 안팎이 가득 차 있습니다.
[4.57]He should be neither of his inside nor of outside world; and, leaving all thoughts, he should think of nothing.
그는 자신의 내부 세계나 외부 세계에 속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생각을 버리고 아무 생각도 해서는 안 됩니다.
[4.58]The whole of this world and all the schemes of the mind are but the creations of thought. Discarding these thoughts and taking leave of all conjectures, O Rāma! Obtain peace.
이 세상 전체와 마음의 모든 계획은 생각의 창조물일 뿐입니다. 오 라마[51]여,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추측을 버리십시오! 평화를 얻으십시오.
[4.59]As camphor disappears in fire, and rock salt in water, so the mind united with the ātmā loses its identity.
장뇌가 불 속에서 사라지고 암염이 물 속에서 사라지듯이, 아트마와 결합된 마음은 그 정체성을 잃습니다.
[4.60]When the knowable, and the knowledge, are both destroyed equally, then there is no second way (i.e., Duality is destroyed).
알 수 있는 것과 지식이 모두 동등하게 파괴되면 두 번째 방법은 없습니다(즉, 이원성이 파괴됩니다).
[4.61]All this movable and immovable world is mind. When the mind has attained to the unmanī avasthā, there is no dwaita (from the absence of the working of the mind.)
이 움직일 수 있는 세상과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은 모두 마음이다. 마음이 운마니 아바스타unmanī avasthā에 도달하면 드바이타dvaita(duality,마음의 작용이 없는 데서 오는)가 없습니다.
[4.62]mind disappears by removing the knowable, and, on its disappearance, ātmā only remains behind.
마음은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아뜨마(atmā)만 뒤에 남게 됩니다.
[4.63]The highsouled āchāryas (Teachers) of yore gained experience in the various methods of Samādhi themselves, and then they preached them to others.
옛날의 고결한 아차리아(스승)들은 사마띠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경험을 얻었고, 그런 다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4.64]Salutations to Thee, O Susumnā, to Thee O Kundalinī, to Thee O Sudhā, born of Chandra, to Thee O manomnanī! To Thee O great power, energy and the intelligent spirit!
오 수숨나, 오 쿤달리니, 찬드라Chandra[52]에서 태어난 오 수다, 오 마놈나니(मनोन्मनी manonmanī)[53]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에게 오, 위대한 힘과 에너지와 지성적인 정신이여!
[4.65]I will describe now the practice of anāhata nāda, as propounded by Goraksa Nātha, for the benefit of those who are unable to understand the principles of knowledge—a method, which is liked by the ignorant also.
나는 이제 지식의 원리를 (아직)이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고락사 나타(Goraksa Nātha)가 제안한 아나하타 나다(anahata nāda) 수행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 방법은 (잔꾀가 없는)단순해 사람들도 좋아하는 방법입니다.
[4.66]ādinātha propounded ¼ crore methods of trance, and they are all extant. Of these, the hearing of the anāhata nāda is the Only one, the chief, in my opinion.
아디나타ādinātha는 ¼ 크로어(10,000,000)[54]의 트랜스[55] 방법을 제안했으며 모두 현존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중에서 아나하타 나다(anāhata nāda)가 듣는 것이 유일한 것,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4.67]Sitting with mukta āsana and with the Sāmbhavī madill, the Yogī should hear the sound inside his right ear, with collected mind.
묵타 아사나(mukta āsana)와 삼바비 마딜(Sāmbhavī madill)과 함께 앉아 있는 요기는 마음을 모아 오른쪽 귀 안에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4.68]The ears, the eyes, the nose, and the mouth should be closed and then the clear sound is heard in the passage of the Susumnā which has been cleansed of all its impurities.
귀, 눈, 코, 입을 닫아야 하며,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수숨나의 통로에서 맑은 소리가 들립니다.
[4.69]In all the Yogas, there are four states: (1) ārambha or the preliminary, (2) Ghata, or the state of a jar, (3) Parichaya (known), (4) nispatti (consumate.)
모든 요가에는 네 가지 상태가 있습니다: (1) 아람바 또는 예비 상태, (2) 가타 또는 항아리의 상태, (3) 파리차야(알려짐), (4) 니스파티(완성) (또는 니슈타바스타 Nishthavastha)
[4.70]
ārambha Avasthā
아람바 아바스타
When the Brahma granthi (in the heart) is pierced through by Prānāyāma, then a sort of happiness is experienced in the vacuum of the heart, and the anāhat sounds, like various tinkling sounds of ornaments, are heard in the body.
브라마 그란티(가슴 속)가 프라나야마에 의해 관통되면, 마음의 진공 속에서 일종의 행복이 경험되고, 장식품의 딸랑이는 다양한 소리와 같은 아나하트 소리가 몸에서 들립니다.
[4.71]In the ārambha, a Yogī's body becomes divine, glowing, healthy, and emits a divine smell. The whole of his heart becomes void.
아람바에서 요기의 몸은 신성해지고, 빛나고, 건강해지며, 신성한 냄새를 발산합니다. 그의 마음 전체가 공허해집니다.
[4.72]The Ghata Avasthā
가타 아바스타
In the second stage, the airs are united into one and begin moving in the middle channel. The Yogī's posture becomes firm, and he becomes wise like a god.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공기가 하나로 합쳐져 중간 채널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요기의 자세는 확고해지고, 신처럼 현명해집니다.
[4.73]By this means the Visnu knot (in the throat) is pierced which is indicated by highest pleasure experienced, And then the Bherī sound (like the beating of a kettle drain) is evolved in the vacuum in the throat.
이를 통해 (목에 있는) 비슈누 매듭이 뚫리게 되는데, 이는 경험한 최고의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그런 다음 목구멍의 진공 상태에서 베리Bherī 소리(주전자 배수구를 두드리는 소리와 같은)가 발생합니다.
[4.74]The Parichaya Avasthā
파리차야 아바스타
In the third stage, the sound of a drum is known to arise in tie Sūnya between the eyebrows, and then the Vāyu goes to the mahāśūnya, which is the home of all the siddhīs.
세 번째 단계에서는 눈썹 사이의 묶인 수니야Sūnya에서 북소리가 발생하고 바유Vāyu는 모든 싯디siddhīs의 고향인 마하수니야mahāśūnya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75]Conquering, then, the pleasures of the mind, ecstacy is spontaneously produced which is devoid of evils, pains, old age, disease, hunger and sleep.
그러면 마음의 즐거움을 정복하고 악, 고통, 늙음, 질병, 배고픔, 잠이 없는 황홀경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4.76]The Nishthavastha
니슈타바스타
When the Rudra granthi is pierced and the air enters the seat of the Lord (the space between the eyebrows), then the perfect sound like that of a flute is produced.
루드라 그란티를 뚫고 공기가 신의 자리(미간 사이)로 들어가면 피리 소리와 같은 완벽한 소리가 만들어 집니다.
[4.77]The union of the mind and the sound is called theRājaYoga. The (real) Yogī becomes the creator and destroyer of the universe, like God.
마음과 소리의 결합을 라자요가(Rāja Yoga)라고 합니다. (실제) 요기(Yogī)는 신처럼 우주의 창조자이자 파괴자(와 하나)가 됩니다.
[4.78]Perpetual Happiness is achieved by this; I do not care if the mukti be not attained. This happiness, resulting from absorption [in Brahma], is obtained by means of RajaYoga.
이를 통해 영원한 행복이 달성됩니다. 묵티(mukti)를 얻지 못하더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브라흐마에] 흡수되어 생기는 이 행복은 라자요가를 통해 얻습니다.
[4.79]Those who are ignorant of the RājaYoga and practise only the HathaYoga, will, in my opinion, waste their energy fruitlessly.
내 생각에는 라자요가에 대해 무지하고 하타요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4.80]Contemplation on the space between the eyebrows is, in my opinion, best for accomplishing soon the Unmanī state. For people of small intellect, it is a very easy method for obtaining perfection in the RajaYoga. The Laya produced by nāda, at once gives experience (of spiritual powers)
내 생각에는 눈썹 사이의 공간에 대한 명상이 곧 운마니 상태를 이루는 데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초보자들에게는 라자요가에서 완벽함을 얻는 매우 쉬운 방법입니다. 나다nāda가 생산한 라야Laya는 즉시 (영적 힘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4.81]The happiness which increases in the hearts of Yogiśwaras, who have gained success in Samādhi by means of attention to the nāda, is beyond description, and is known to Śri Gurū Nātha alone.
나다nāda에 대한 관심을 통해 사마디(띠)Samādhi에서 성공을 거둔 요기스와라Yogiśwaras의 마음에 커지는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스리구루나다Śri Gurū Nātha만이 알고 있습니다.
[4.82]The sound which a muni hears by closing his ears with his fingers should be heard attentively, till the mind becomes steady in it.
무니가 손가락으로 귀를 막아 듣는 소리는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4.83]By practising with this nāda, all other external sounds are stopped. The Yogī becomes happy by overcoming all distractions within 5 days.
이 나다로 수행함으로써 다른 모든 외부 소리가 멈춥니다. 요기는 5일 안에 모든 방해 요소를 극복함으로써 행복해집니다.
[4.84]In the beginning, the sounds heard are of great variety and very loud; but, as the practice increases, they become more and more subtle.
처음에는 들리는 소리가 매우 다양하고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증가할수록 그것들은 점점 더 미묘해 집니다.
[4.85]In the first stage, the sounds are surging, thundering like the beating of kettle drums and jingling ones. In the intermediate stage, they are like those produced by conch, mridanga, bells, etc.
첫 번째 단계에서는 주전자 드럼을 치는 것처럼 천둥소리가 울리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중간 단계에서는 소라, 므리당가mridanga[56], 종 등이 생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4.86]In the last stage, the sounds resemble those from tinklets, flute, Vīnā, bee, &c. These various kinds of sounds are heard as being produced in the body.
마지막 단계에서는 소리가 팅클렛, 플루트, 비나Vīnā, 벌 등의 소리와 유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소리는 신체에서 생성되면서 듣게 됩니다.
[4.87]Though hearing loud sounds like those of thunder, kettle drums, etc., one should practise with the subtle sounds also
천둥, 북소리 등 큰 소리가 들리지만 미묘한 소리도 연습해야 합니다.
[4.88]Leaving the loudest, taking up the subtle one, and leaving the subtle one, taking up the loudest, thus practising, the distracted mind does not wander elsewhere
가장 큰 소리를 버리고 미묘한 것을 취하고, 미묘한 것을 버리고 가장 큰 소리를 들어서 수행하면 산만한 마음은 다른 곳으로 헤매지 않는다.
[4.89]Wherever the mind attaches itself first, it becomes steady there; and then it becomes absorbed in it.
마음이 먼저 집착하는 곳에는 마음이 안정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것에 흡수되게 됩니다.
[4.90]Just as a bee, drinking sweet juice, does not care for the smell of the flower; so the mind, absorbed in the nāda, does not desire the objects of enjoyment.
꿀벌이 달콤한 주스를 마시면서 꽃의 냄새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다에 흡수된 마음은 즐거움의 대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4.91]The mind, like an elephant habituated to wander in the garden of enjoyments, is capable of being controlled by the sharp goad of anāhata nāda.
즐거움의 정원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는 코끼리처럼 마음은 아나하타 나다(anahata nāda)라는 날카로운 자극에 의해 통제될 수 있습니다.
[4.92]The mind, captivated in the snare of nāda, gives up all its activity; and, like a bird with clipped wings, becomes calm at once.
나다의 올무에 사로잡힌 마음은 모든 활동을 포기합니다. 그러면 날개가 잘린 새처럼 즉시 조용해집니다.
[4.93]Those desirous of the kingdom of Yoga, should take up the practice of hearing the anāhata nāda, with mind collected and free from all cares.
요가의 왕국을 원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모으고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 아나하타 나다(anāhata nāda)를 듣는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4.94]Nada is the snare for catching the mind; and, when it is caught like a deer, it can be killed also like it.
나다는 마음을 사로잡는 올무입니다. 그리고 사슴처럼 잡히면 사슴처럼 죽을 수도 있습니다.
[4.95]Nāda is the bolt of the stable door for the horse (the minds of the Yogīs). A Yogī should determine to practise constantly in the hearing of the nāda sounds.
나다Nāda는 말(요기의 마음)을 위한 마구간 문의 빗장입니다. 요기는 나다 소리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수행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4.96]Mind gets the properties of calcined mercury. When deprived of its unsteadiness it is calcined, combined with the sulphur of nāda, and then it roams like it in tine supportless ākāśa or Brahma.
마음은 소성된 수은의 특성을 얻습니다. 불안정성이 제거되면 소성되어 나다nāda의 유황과 결합된 다음 지지대 없는 아카사ākāśa 또는 브라흐마Brahma에서 그처럼 돌아다닙니다.
[4.97]The mind is like a serpent, forgetting all its unsteadiness by hearing the nāda, it does not run away anywhere.
마음은 뱀과 같아서 나다(nāda)를 들음으로써 모든 불안정함을 잊어버리고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4.98]The fire, catching firewood, is extinguished along with it (after burning it up); and so the mind also, working with the nāda, becomes latent along with it.
장작을 붙잡은 불은 그것과 함께 꺼집니다 (불태운 후). 그래서 나다와 함께 일하는 마음 역시 나다와 함께 잠복하게 됩니다.
[4.99]The antahkarana (mind), like a deer, becomes absorbed and motionless on hearing the sound of hells, etc.; and then it is very easy for an expert archer to kill it.
안타카라나(마음)는 사슴처럼 지옥의 소리 등을 들으면 몰입되어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숙련된 궁수가 그것을 죽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4.100]The knowable interpenetrates the anāhata sound which is heard, and the mind interpenetrates the knowable. The mind becomes absorbed there, which is the seat of the allpervading, almighty Lord.
인식 가능한 것은 들리는 아나하타 소리에 침투하고, 마음은 인식 가능한 것에 침투합니다. 마음은 모든 곳에 두루 퍼지시는 전능하신 주님(권능있는 주인)의 자리인 그곳에서 흡수됩니다.
[4.101]So long as the sounds continue, there is the idea of ākāśa. When they disappear, then it is called Para Brahma, Paramātmana.
소리가 계속되는 한 아카사ākāśa[57]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라질 때, 그것은 파라 브라흐마, 파라마트마나(Paramātmana)라고 불립니다.
[4.102]Whatever is heard in the form of nāda, is the śakti(power). That which is formless, the final state of the Tatwas, is tile Parameśwara.
나다nāda의 형태로 들리는 것은 무엇이든 삭티śakti(힘)입니다. 형태가 없는 것, 타트와스Tatwas의 최종 상태는 타일 파라메스와라Parameśwara[58]입니다.
[4.103]All the methods of Hatha are meant for gaining success in the RajaYoga; for, the man, who is wellestablished in the RajaYoga, overcomes death.
하타의 모든 방법은 라자요가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라자요가를 확고히 확립한 사람은 죽음을 극복하기 때문입니다.(죽음이 육체의 정당한 상속자임을 이해합니다)[59]
[4.104]Tatwa is the seed, Hatha the field; and Indifference(Vairāgya) the water. By the action of these three, the creeper Unmanī thrives very rapidly.
타트와Tatwa[60]는 씨앗이고 하타Hatha는 밭입니다. 그리고 무관심(Vairāgya)이라는 물. 이 세 가지의 활동으로 덩굴 운마니(Unmanī)는 매우 빠르게 번성합니다.
[4.105]All the accumulations of sins are destroyed by practising always with the nāda; and the mind and the airs do certainly become latent in the colorless (Paramātmana).
모든 축적된 죄는 항상 나다와 함께 수행함으로써 소멸됩니다. 그리고 마음과 공기는 확실히 무색(Paramātmana) 속에 잠복하게 됩니다.
[4.106]Such a one does not hear the noise of the conch and Dundubhi. Being in the Unmanī avasthā, his body becomes like a piece of wood.
그런 사람은 소라와 둔두비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운마니 아바스타Unmanī avasthā에 있으면 그의 몸은 나무 조각(상)처럼 (완전하게)됩니다.
[4.107]There is no doubt such a Yogī becomes free from all states, from all cares, and remains like one dead.
그러한 요기가 모든 상태와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 죽은 자처럼 남아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4.108]He is not devoured by death, is not bound by his actions.
The Yogī who is engaged in Samādhi is overpowered by none.
그분은 죽음에 삼켜지지 않으시며, 그분의 행위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사마띠(Samādhi)에 종사하는 요기(Yogī)는 그 누구에게도 압도당하지 않습니다.
[4.109]The Yogī, engaged in Samādhi, feels neither smell, nor taste, color, touch nor sound, nor is conscious of his own self.
사마띠(Samādhi)에 종사하는 요기(Yogī)는 냄새, 맛, 색깔, 촉감, 소리를 느끼지 못하며 자신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4.110]He whose mind is neither sleeping, waking,
remembering, destitute of memory, disappearing nor appearing, is liberated.8
마음이 자지도 깨어있지도 않은 사람,
기억하는 것, 기억이 없는 것,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것 등이 해탈됩니다.
[4.111]He is not affected by heat or cold, pain or pleasure, respect or disrespect. Such a Yogī is absorbed in Samādhi.
그는 더위나 추위, 고통이나 즐거움, 존경이나 무례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요기는 사마띠(Samādhi)에 빠져 있습니다.
[4.112]He who, though awake, appears like one sleeping and is without inhalation or exhalation (due to Kumbhaka) is certainly free.
비록 깨어 있지만 자는 사람처럼 보이고 (쿰바카로 인해)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자유롭습니다.
[4.113]The Yogī, engaged in Samādhi, cannot be killed by any instrument, and is beyond the controlling power of beings. He is beyond the reach of incantations and charms.
사마띠(Samādhi)에 종사하는 요기(Yogī)는 어떤 도구로도 죽일 수 없으며 존재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존재입니다. 그는 주문과 부적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4.114]As long as the Prāna does not enter and flow in the middle channel and the vindu does not become firm by the control of the movements of the Prāna; as long as the mind does not assume the form of Brahma without any effort in contemplation, so long all the talk of knowledge and wisdom is merely the nonsensical babbling of a mad man.
(끊없는 연습을 통해서)프라나가 중간 통로로 들어가 흐르지 않고 빈두가 프라나의 움직임을 통제하여 (몸이)굳건해지지 않는 한,(그리고) 마음이 명상(묵상)에 대한 노력 없이 절대적인 것(브라흐마)[61]의 형태를 취하지 못하는 한, 지식과 지혜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단지 미친 사람의 터무니없는 옹알이일 뿐입니다.
THE END
끝
|
नमः शिवाय गुरवे नादबिन्दुकलात्मने ।
निरञ्जनपदं याति नित्यं तत्र परायणः ॥ ४.१ ॥
अथेदानीं प्रवक्ष्यामि समाधिक्रमं उत्तमम् ।
मृत्युघ्नं च सुखोपायं ब्रह्मानन्दकरं परम् ॥ ४.२ ॥
राजयोगः समाधिश्च उन्मनी च मनोन्मनी ।
अमरत्वं लयस्तत्त्वं शून्याशून्यं परं पदम् ॥ ४.३ ॥
अमनस्कं तथाद्वैतं निरालम्बं निरञ्जनम् ।
जीवन्मुक्तिश्च सहजा तुर्या चेत्येकवाचकाः ॥ ४.४ ॥
सलिले सैन्धवं यद्वत्साम्यं भजति योगतः ।
तथात्ममनसोरैक्यं समाधिरभिधीयते ॥ ४.५ ॥
यदा संक्षीयते प्राणो मानसं च प्रलीयते ।
तदा समरसत्वं च समाधिरभिधीयते ॥ ४.६ ॥
तत्समं च द्वयोरैक्यं जीवात्मपरमात्मनोः ।
प्रनष्टसर्वसङ्कल्पः समाधिः सोऽभिधीयते ॥ ४.७ ॥
राजयोगस्य माहात्म्यं को वा जानाति तत्त्वतः ।
ज्ञानं मुक्तिः स्थितिः सिद्धिर्गुरुवाक्येन लभ्यते ॥ ४.८ ॥
दुर्लभो विषयत्यागो दुर्लभं तत्त्वदर्शनम् ।
दुर्लभा सहजावस्था सद्गुरोः करुणां विना ॥ ४.९ ॥
विविधैरासनैः कुभैर्विचित्रैः करणैरपि ।
प्रबुद्धायां महाशक्तौ प्राणः शून्ये प्रलीयते ॥ ४.१० ॥
उत्पन्नशक्तिबोधस्य त्यक्तनिःशेषकर्मणः ।
योगिनः सहजावस्था स्वयं एव प्रजायते ॥ ४.११ ॥
सुषुम्णावाहिनि प्राणे शून्ये विशति मानसे ।
तदा सर्वाणि कर्माणि निर्मूलयति योगवित् ॥ ४.१२ ॥
अमराय नमस्तुभ्यं सोऽपि कालस्त्वया जितः ।
पतितं वदने यस्य जगदेतच्चराचरम् ॥ ४.१३ ॥
चित्ते समत्वं आपन्ने वायौ व्रजति मध्यमे ।
तदामरोली वज्रोली सहजोली प्रजायते ॥ ४.१४ ॥
ज्ञानं कुतो मनसि सम्भवतीह तावत्
प्राणोऽपि जीवति मनो म्रियते न यावत् ।
प्राणो मनो द्वयं इदं विलयं नयेद्यो
मोक्षं स गच्छति नरो न कथंचिदन्यः ॥ ४.१५ ॥
ज्ञात्वा सुषुम्णासद्भेदं कृत्वा वायुं च मध्यगम् ।
स्थित्वा सदैव सुस्थाने ब्रह्मरन्ध्रे निरोधयेत् ॥ ४.१६ ॥
सूर्यचन्द्रमसौ धत्तः कालं रात्रिन्दिवात्मकम् ।
भोक्त्री सुषुम्ना कालस्य गुह्यं एतदुदाहृतम् ॥ ४.१७ ॥
द्वासप्ततिसहस्राणि नाडीद्वाराणि पञ्जरे ।
सुषुम्णा शाम्भवी शक्तिः शेषास्त्वेव निरर्थकाः ॥ ४.१८ ॥
वायुः परिचितो यस्मादग्निना सह कुण्डलीम् ।
बोधयित्वा सुषुम्णायां प्रविशेदनिरोधतः ॥ ४.१९ ॥
सुषुम्णावाहिनि प्राणे सिद्ध्यत्येव मनोन्मनी ।
अन्यथा त्वितराभ्यासाः प्रयासायैव योगिनाम् ॥ ४.२० ॥
पवनो बध्यते येन मनस्तेनैव बध्यते ।
मनश्च बध्यते येन पवनस्तेन बध्यते ॥ ४.२१ ॥
हेतुद्वयं तु चित्तस्य वासना च समीरणः ।
तयोर्विनष्ट एकस्मिन्तौ द्वावपि विनश्यतः ॥ ४.२२ ॥
मनो यत्र विलीयेत पवनस्तत्र लीयते ।
पवनो लीयते यत्र मनस्तत्र विलीयते ॥ ४.२३ ॥
दुग्धाम्बुवत्संमिलितावुभौ तौ
तुल्यक्रियौ मानसमारुतौ हि ।
यतो मरुत्तत्र मनःप्रवृत्तिर्
यतो मनस्तत्र मरुत्प्रवृत्तिः ॥ ४.२४ ॥
तत्रैकनाशादपरस्य नाश
एकप्रवृत्तेरपरप्रवृत्तिः ।
अध्वस्तयोश्चेन्द्रियवर्गवृत्तिः
प्रध्वस्तयोर्मोक्षपदस्य सिद्धिः ॥ ४.२५ ॥
रसस्य मनसश्चैव चञ्चलत्वं स्वभावतः ।
रसो बद्धो मनो बद्धं किं न सिद्ध्यति भूतले ॥ ४.२६ ॥
मूर्च्छितो हरते व्याधीन्मृतो जीवयति स्वयम् ।
बद्धः खेचरतां धत्ते रसो वायुश्च पार्वति ॥ ४.२७ ॥
मनः स्थैर्यं स्थिरो वायुस्ततो बिन्दुः स्थिरो भवेत् ।
बिन्दुस्थैर्यात्सदा सत्त्वं पिण्डस्थैर्यं प्रजायते ॥ ४.२८ ॥
इन्द्रियाणां मनो नाथो मनोनाथस्तु मारुतः ।
मारुतस्य लयो नाथः स लयो नादं आश्रितः ॥ ४.२९ ॥
सोऽयं एवास्तु मोक्षाख्यो मास्तु वापि मतान्तरे ।
मनःप्राणलये कश्चिदानन्दः सम्प्रवर्तते ॥ ४.३० ॥
प्रनष्टश्वासनिश्वासः प्रध्वस्तविषयग्रहः ।
निश्चेष्टो निर्विकारश्च लयो जयति योगिनाम् ॥ ४.३१ ॥
उच्छिन्नसर्वसङ्कल्पो निःशेषाशेषचेष्टितः ।
स्वावगम्यो लयः कोऽपि जायते वागगोचरः ॥ ४.३२ ॥
यत्र दृष्टिर्लयस्तत्र भूतेन्द्रियसनातनी ।
सा शक्तिर्जीवभूतानां द्वे अलक्ष्ये लयं गते ॥ ४.३३ ॥
लयो लय इति प्राहुः कीदृशं लयलक्षणम् ।
अपुनर्वासनोत्थानाल्लयो विषयविस्मृतिः ॥ ४.३४ ॥
वेदशास्त्रपुराणानि सामान्यगणिका इव ।
एकैव शाम्भवी मुद्रा गुप्ता कुलवधूरिव ॥ ४.३५ ॥
अथ शाम्भवी
अन्तर्लक्ष्यं बहिर्दृष्टिर्निमेषोन्मेषवर्जिता ।
एषा सा शाम्भवी मुद्रा वेदशास्त्रेषु गोपिता ॥ ४.३६ ॥
अन्तर्लक्ष्यविलीनचित्तपवनो योगी यदा वर्तते
दृष्ट्या निश्चलतारया बहिरधः पश्यन्नपश्यन्नपि ।
मुद्रेयं खलु शाम्भवी भवति सा लब्धा प्रसादाद्गुरोः
शून्याशून्यविलक्षणं स्फुरति तत्तत्त्वं पदं शाम्भवम् ॥ ४.३७ ॥
श्रीशाम्भव्याश्च खेचर्या अवस्थाधामभेदतः ।
भवेच्चित्तलयानन्दः शून्ये चित्सुखरूपिणि ॥ ४.३८ ॥
तारे ज्योतिषि संयोज्य किंचिदुन्नमयेद्भ्रुवौ ।
पूर्वयोगं मनो युञ्जन्नुन्मनीकारकः क्षणात् ॥ ४.३९ ॥
केचिदागमजालेन केचिन्निगमसङ्कुलैः ।
केचित्तर्केण मुह्यन्ति नैव जानन्ति तारकम् ॥ ४.४० ॥
अर्धोन्मीलितलोचनः स्थिरमना नासाग्रदत्तेक्षणश्
चन्द्रार्कावपि लीनतां उपनयन्निस्पन्दभावेन यः ।
ज्योतीरूपं अशेषबीजं अखिलं देदीप्यमानं परं
तत्त्वं तत्पदं एति वस्तु परमं वाच्यं किं अत्राधिकम् ॥ ४.४१ ॥
दिवा न पूजयेल्लिङ्गं रात्रौ चैव न पूजयेत् ।
सर्वदा पूजयेल्लिङ्गं दिवारात्रिनिरोधतः ॥ ४.४२ ॥
अथ खेचरी
सव्यदक्षिणनाडीस्थो मध्ये चरति मारुतः ।
तिष्ठते खेचरी मुद्रा तस्मिन्स्थाने न संशयः ॥ ४.४३ ॥
इडापिङ्गलयोर्मध्ये शून्यं चैवानिलं ग्रसेत् ।
तिष्ठते खेचरी मुद्रा तत्र सत्यं पुनः पुनः ॥ ४.४४ ॥
सूर्च्याचन्द्रमसोर्मध्ये निरालम्बान्तरे पुनः ।
संस्थिता व्योमचक्रे या सा मुद्रा नाम खेचरी ॥ ४.४५ ॥
सोमाद्यत्रोदिता धारा साक्षात्सा शिववल्लभा ।
पूरयेदतुलां दिव्यां सुषुम्णां पश्चिमे मुखे ॥ ४.४६ ॥
पुरस्ताच्चैव पूर्येत निश्चिता खेचरी भवेत् ।
अभ्यस्ता खेचरी मुद्राप्युन्मनी सम्प्रजायते ॥ ४.४७ ॥
भ्रुवोर्मध्ये शिवस्थानं मनस्तत्र विलीयते ।
ज्ञातव्यं तत्पदं तुर्यं तत्र कालो न विद्यते ॥ ४.४८ ॥
अभ्यसेत्खेचरीं तावद्यावत्स्याद्योगनिद्रितः ।
सम्प्राप्तयोगनिद्रस्य कालो नास्ति कदाचन ॥ ४.४९ ॥
निरालम्बं मनः कृत्वा न किंचिदपि चिन्तयेत् ।
सबाह्याभ्यन्तरं व्योम्नि घटवत्तिष्ठति ध्रुवम् ॥ ४.५० ॥
बाह्यवायुर्यथा लीनस्तथा मध्यो न संशयः ।
स्वस्थाने स्थिरतां एति पवनो मनसा सह ॥ ४.५१ ॥
एवं अभ्यस्यतस्तस्य वायुमार्गे दिवानिशम् ।
अभ्यासाज्जीर्यते वायुर्मनस्तत्रैव लीयते ॥ ४.५२ ॥
अमृतैः प्लावयेद्देहं आपादतलमस्तकम् ।
सिद्ध्यत्येव महाकायो महाबलपराक्रमः ॥ ४.५३ ॥
शक्तिमध्ये मनः कृत्वा शक्तिं मानसमध्यगाम् ।
मनसा मन आलोक्य धारयेत्परमं पदम् ॥ ४.५४ ॥
खमध्ये कुरु चात्मानं आत्ममध्ये च खं कुरु ।
सर्वं च खमयं कृत्वा न किंचिदपि चिन्तयेत् ॥ ४.५५ ॥
अन्तः शून्यो बहिः शून्यः शून्यः कुम्भ इवाम्बरे ।
अन्तः पूर्णो बहिः पूर्णः पूर्णः कुम्भ इवार्णवे ॥ ४.५६ ॥
बाह्यचिन्ता न कर्तव्या तथैवान्तरचिन्तनम् ।
सर्वचिन्तां परित्यज्य न किंचिदपि चिन्तयेत् ॥ ४.५७ ॥
सङ्कल्पमात्रकलनैव जगत्समग्रं
सङ्कल्पमात्रकलनैव मनोविलासः ।
सङ्कल्पमात्रमतिं उत्सृज निर्विकल्पम्
आश्रित्य निश्चयं अवाप्नुहि राम शान्तिम् ॥ ४.५८ ॥
कर्पूरं अनले यद्वत्सैन्धवं सलिले यथा ।
तथा सन्धीयमानं च मनस्तत्त्वे विलीयते ॥ ४.५९ ॥
ज्ञेयं सर्वं प्रतीतं च ज्ञानं च मन उच्यते ।
ज्ञानं ज्ञेयं समं नष्टं नान्यः पन्था द्वितीयकः ॥ ४.६० ॥
मनोदृश्यं इदं सर्वं यत्किंचित्सचराचरम् ।
मनसो ह्युन्मनीभावाद्द्वैतं नैवोलभ्यते ॥ ४.६१ ॥
ज्ञेयवस्तुपरित्यागाद्विलयं याति मानसम् ।
मनसो विलये जाते कैवल्यं अवशिष्यते ॥ ४.६२ ॥
एवं नानाविधोपायाः सम्यक्स्वानुभवान्विताः ।
समाधिमार्गाः कथिताः पूर्वाचार्यैर्महात्मभिः ॥ ४.६३ ॥
सुषुम्णायै कुण्डलिन्यै सुधायै चन्द्रजन्मने ।
मनोन्मन्यै नमस्तुभ्यं महाशक्त्यै चिदात्मने ॥ ४.६४ ॥
अशक्यतत्त्वबोधानां मूढानां अपि संमतम् ।
प्रोक्तं गोरक्षनाथेन नादोपासनं उच्यते ॥ ४.६५ ॥
श्रीआदिनाथेन सपादकोटि
लयप्रकाराः कथिता जयन्ति ।
नादानुसन्धानकं एकं एव
मन्यामहे मुख्यतमं लयानाम् ॥ ४.६६ ॥
मुक्तासने स्थितो योगी मुद्रां सन्धाय शाम्भवीम् ।
शृणुयाद्दक्षिणे कर्णे नादं अन्तास्थं एकधीः ॥ ४.६७ ॥
श्रवणपुटनयनयुगल
घ्राणमुखानां निरोधनं कार्यम् ।
शुद्धसुषुम्णासरणौ
स्फुटं अमलः श्रूयते नादः ॥ ४.६८ ॥
आरम्भश्च घटश्चैव तथा परिचयोऽपि च ।
निष्पत्तिः सर्वयोगेषु स्यादवस्थाचतुष्टयम् ॥ ४.६९ ॥
अथ आरम्भावस्था
ब्रह्मग्रन्थेर्भवेद्भेदो ह्यानन्दः शून्यसम्भवः ।
विचित्रः क्वणको देहेऽनाहतः श्रूयते ध्वनिः ॥ ४.७० ॥
दिव्यदेहश्च तेजस्वी दिव्यगन्धस्त्वरोगवान् ।
सम्पूर्णहृदयः शून्य आरम्भे योगवान्भवेत् ॥ ४.७१ ॥
अथ घटावस्था
द्वितीयायां घटीकृत्य वायुर्भवति मध्यगः ।
दृढासनो भवेद्योगी ज्ञानी देवसमस्तदा ॥ ४.७२ ॥
विष्णुग्रन्थेस्ततो भेदात्परमानन्दसूचकः ।
अतिशून्ये विमर्दश्च भेरीशब्दस्तदा भवेत् ॥ ४.७३ ॥
अथ परिचयावस्था
तृतीयायां तु विज्ञेयो विहायो मर्दलध्वनिः ।
महाशून्यं तदा याति सर्वसिद्धिसमाश्रयम् ॥ ४.७४ ॥
चित्तानन्दं तदा जित्वा सहजानन्दसम्भवः ।
दोषदुःखजराव्याधिक्षुधानिद्राविवर्जितः ॥ ४.७५ ॥
अथ निष्पत्त्यवस्था
रुद्रग्रन्थिं यदा भित्त्वा शर्वपीठगतोऽनिलः ।
निष्पत्तौ वैणवः शब्दः क्वणद्वीणाक्वणो भवेत् ॥ ४.७६ ॥
एकीभूतं तदा चित्तं राजयोगाभिधानकम् ।
सृष्टिसंहारकर्तासौ योगीश्वरसमो भवेत् ॥ ४.७७ ॥
अस्तु वा मास्तु वा मुक्तिरत्रैवाखण्डितं सुखम् ।
लयोद्भवं इदं सौख्यं राजयोगादवाप्यते ॥ ४.७८ ॥
राजयोगं अजानन्तः केवलं हठकर्मिणः ।
एतानभ्यासिनो मन्ये प्रयासफलवर्जितान् ॥ ४.७९ ॥
उन्मन्यवाप्तये शीघ्रं भ्रूध्यानं मम संमतम् ।
राजयोगपदं प्राप्तुं सुखोपायोऽल्पचेतसाम् ।
सद्यः प्रत्ययसन्धायी जायते नादजो लयः ॥ ४.८० ॥
नादानुसन्धानसमाधिभाजां
योगीश्वराणां हृदि वर्धमानम् ।
आनन्दं एकं वचसां अगम्यं
जानाति तं श्रीगुरुनाथ एकः ॥ ४.८१ ॥
कर्णौ पिधाय हस्ताभ्यां यः शृणोति ध्वनिं मुनिः ।
तत्र चित्तं स्थिरीकुर्याद्यावत्स्थिरपदं व्रजेत् ॥ ४.८२ ॥
अभ्यस्यमानो नादोऽयं बाह्यं आवृणुते ध्वनिम् ।
पक्षाद्विक्षेपं अखिलं जित्वा योगी सुखी भवेत् ॥ ४.८३ ॥
श्रूयते प्रथमाभ्यासे नादो नानाविधो महान् ।
ततोऽभ्यासे वर्धमाने श्रूयते सूक्ष्मसूक्ष्मकः ॥ ४.८४ ॥
आदौ जलधिजीमूतभेरीझर्झरसम्भवाः ।
मध्ये मर्दलशङ्खोत्था घण्टाकाहलजास्तथा ॥ ४.८५ ॥
अन्ते तु किङ्किणीवंशवीणाभ्रमरनिःस्वनाः ।
इति नानाविधा नादाः श्रूयन्ते देहमध्यगाः ॥ ४.८६ ॥
महति श्रूयमाणेऽपि मेघभेर्यादिके ध्वनौ ।
तत्र सूक्ष्मात्सूक्ष्मतरं नादं एव परामृशेत् ॥ ४.८७ ॥
घनं उत्सृज्य वा सूक्ष्मे सूक्ष्मं उत्सृज्य वा घने ।
रममाणं अपि क्षिप्तं मनो नान्यत्र चालयेत् ॥ ४.८८ ॥
यत्र कुत्रापि वा नादे लगति प्रथमं मनः ।
तत्रैव सुस्थिरीभूय तेन सार्धं विलीयते ॥ ४.८९ ॥
मकरन्दं पिबन्भृङ्गी गन्धं नापेक्षते यथा ।
नादासक्तं तथा चित्तं विषयान्नहि काङ्क्षते ॥ ४.९० ॥
मनोमत्तगजेन्द्रस्य विषयोद्यानचारिणः ।
समर्थोऽयं नियमने निनादनिशिताङ्कुशः ॥ ४.९१ ॥
बद्धं तु नादबन्धेन मनः सन्त्यक्तचापलम् ।
प्रयाति सुतरां स्थैर्यं छिन्नपक्षः खगो यथा ॥ ४.९२ ॥
सर्वचिन्तां परित्यज्य सावधानेन चेतसा ।
नाद एवानुसन्धेयो योगसाम्राज्यं इच्छता ॥ ४.९३ ॥
नादोऽन्तरङ्गसारङ्गबन्धने वागुरायते ।
अन्तरङ्गकुरङ्गस्य वधे व्याधायतेऽपि च ॥ ४.९४ ॥
अन्तरङ्गस्य यमिनो वाजिनः परिघायते ।
नादोपास्तिरतो नित्यं अवधार्या हि योगिना ॥ ४.९५ ॥
बद्धं विमुक्तचाञ्चल्यं नादगन्धकजारणात् ।
मनःपारदं आप्नोति निरालम्बाख्यखेऽटनम् ॥ ४.९६ ॥
नादश्रवणतः क्षिप्रं अन्तरङ्गभुजङ्गमम् ।
विस्मृतय सर्वं एकाग्रः कुत्रचिन्नहि धावति ॥ ४.९७ ॥
काष्ठे प्रवर्तितो वह्निः काष्ठेन सह शाम्यति ।
नादे प्रवर्तितं चित्तं नादेन सह लीयते ॥ ४.९८ ॥
घण्टादिनादसक्तस्तब्धान्तःकरणहरिणस्य ।
प्रहरणं अपि सुकरं स्याच्छरसन्धानप्रवीणश्चेत् ॥ ४.९९ ॥
अनाहतस्य शब्दस्य ध्वनिर्य उपलभ्यते ।
ध्वनेरन्तर्गतं ज्ञेयं ज्ञेयस्यान्तर्गतं मनः ।
मनस्तत्र लयं याति तद्विष्णोः परमं पदम् ॥ ४.१०० ॥
तावदाकाशसङ्कल्पो यावच्छब्दः प्रवर्तते ।
निःशब्दं तत्परं ब्रह्म परमातेति गीयते ॥ ४.१०१ ॥
यत्किंचिन्नादरूपेण श्रूयते शक्तिरेव सा ।
यस्तत्त्वान्तो निराकारः स एव परमेश्वरः ॥ ४.१०२ ॥
इति नादानुसन्धानं
सर्वे हठलयोपाया राजयोगस्य सिद्धये ।
राजयोगसमारूढः पुरुषः कालवञ्चकः ॥ ४.१०३ ॥
तत्त्वं बीजं हठः क्षेत्रं औदासीन्यं जलं त्रिभिः ।
उन्मनी कल्पलतिका सद्य एव प्रवर्तते ॥ ४.१०४ ॥
सदा नादानुसन्धानात्क्षीयन्ते पापसंचयाः ।
निरञ्जने विलीयेते निश्चितं चित्तमारुतौ ॥ ४.१०५ ॥
शङ्खदुन्धुभिनादं च न शृणोति कदाचन ।
काष्ठवज्जायते देह उन्मन्यावस्थया ध्रुवम् ॥ ४.१०६ ॥
सर्वावस्थाविनिर्मुक्तः सर्वचिन्ताविवर्जितः ।
मृतवत्तिष्ठते योगी स मुक्तो नात्र संशयः ॥ ४.१०७ ॥
खाद्यते न च कालेन बाध्यते न च कर्मणा ।
साध्यते न स केनापि योगी युक्तः समाधिना ॥ ४.१०८ ॥
न गन्धं न रसं रूपं न च स्पर्शं न निःस्वनम् ।
नात्मानं न परं वेत्ति योगी युक्तः समाधिना ॥ ४.१०९ ॥
चित्तं न सुप्तं नोजाग्रत्स्मृतिविस्मृतिवर्जितम् ।
न चास्तं एति नोदेति यस्यासौ मुक्त एव सः ॥ ४.११० ॥
न विजानाति शीतोष्णं न दुःखं न सुखं तथा ।
न मानं नोपमानं च योगी युक्तः समाधिना ॥ ४.१११ ॥
स्वस्थो जाग्रदवस्थायां सुप्तवद्योऽवतिष्ठते ।
निःश्वासोच्छ्वासहीनश्च निश्चितं मुक्त एव सः ॥ ४.११२ ॥
अवध्यः सर्वशस्त्राणां अशक्यः सर्वदेहिनाम् ।
अग्राह्यो मन्त्रयन्त्राणां योगी युक्तः समाधिना ॥ ४.११३ ॥
यावन्नैव प्रविशति चरन्मारुतो मध्यमार्गे
यावद्विदुर्न भवति दृढः प्राणवातप्रबन्धात् ।
यावद्ध्याने सहजसदृशं जायते नैव तत्त्वं
तावज्ज्ञानं वदति तदिदं दम्भमिथ्याप्रलापः ॥ ४.११४ ॥
इति हठयोगप्रदीपिकायां समाधिलक्षणं नाम
चतुर्थोपदेशः ।
|